인터뷰 - MBC 스포츠플러스 허구연 야구해설위원

기자명 김기진 기자 (skkujin@skkuw.com)

▲ 유영재 기자 justyu@skkuw.com
 

- (現) MBC 야구해설위원
- (現) KSN 대표이사
- (現) 일구회 부회장
- (現) KBO 야구발전실행위원회 위원장
- (現) 아시아야구연맹 기술위원회 위원장
- (現) 대한야구협회 이사


- 경상남도 진주 출생
-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원 법학 석사
- '85 청보 핀토스 감독
- '87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
- '90 토론토 블루제이스 마이너리그 코치

초등학교 5학년 생애 첫 타석에서 홈런과 장타를 쏘아 올린 천재 타자는 1976년 한일올스타전에서 정강이뼈가 두 동강 나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병상에서의 공부로 법학대학원에 들어간 그는 교수 임용 2년 전 프로야구 해설직을 제안받는다. 다시 야구의 길을 걷게 된 이 청년은 국내 최초의 연봉 계약 해설가로 대담하게 데뷔한다. 감독으로서의 실패를 겪었지만 이마저도 해설의 밑거름으로 삼은 30년 경력의 전문 해설가, 허구연(61)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말끝마다 돔(dome) 구장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해 '기승전돔'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야구 인프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그를 11일 그의 회사인 KSN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부상 후 병상에서 펜을 잡아 고려대 법학대학원에 진학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프로야구가 없었으니까 재기할 생각은 안 했어요. 계속 병원에 있으니까 심심해서 책을 가져와 공부를 했어요. 하루에 8~10시간은 한 것 같아요. 하다 보니 대학원시험을 한 번 쳐봤는데 합격을 했어요. 학교가 발칵 뒤집혔죠. 국가대표씩이나 하던 운동선수가 법대에 입학했으니까.
대학에 입학해서 4번 타자로 뛸 때도 공부를 꾸준히 했어요. 낮에는 훈련하고 밤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어요. 보통 학생들은 놀라죠. 야구하는 애가 도서관에 와서 공부하고 있으니. 하지만 그때는 프로가 있는 세상도 아니었는데 야구만 해선 안 되잖아요. 그때 공부했으니까 지금도 해설을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해설가가 되자마자 야구 용어를 가장 먼저 고쳤는데

▲ '74년 연고대 5개부 주장(앞줄 왼쪽에서 2번째). 허구연 제공

30년간 해설을 하면서 제일 큰 보람은 야구 용어를 바꾼 거예요. 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는 *극일(克日) 감정이 퍼졌을 때였어요. 그렇지만 야구계에는 포볼이나 데드볼같이 엉터리 일본식 야구 용어가 쓰이고 있었죠. 다른 분야는 몰라도 내 분야인 야구만큼은 일본식 용어를 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언어를 지배당한다면 독립국가라고 할 수 없잖아요. MBC △PD △아나운서 △해설가들을 모아놓고 설득했어요. "우리가 중계 전파로 물량공세를 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다. 지금 안 바꾸면 영원히 못 바꾼다. 쓰려면 정확히 영어로 쓰던지 한국식 표현으로 바꾸던지, 일본식 용어는 안 된다." 고맙게도 다들 동의해줬죠. 처음에는 언론에서 욕도 많이 먹었지만 결국에는 다 따라왔어요.

15승 2무 40패. 감독으로서 성적이 아쉽지 않나
처음에는 감독할 생각이 없었어요. 강팀인 MBC 청룡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계속 거절했어요.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그때 하던 일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해설도 하고 글도 두세 군데 연재하다 보니 1년 동안 하루에 5시간밖에 못 잤어요. 그만두지도 못하게 하니까 '이렇게 된 거 감독이나 하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때마침 청보 핀토스에서 계속 러브콜이 오고 있었어요. 가족들도 "계속 승승장구했으니까 실패를 각오하고 부딪혀 보라"고 하고, 저도 '그래 한번 해보자, 젊으니까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서 85년 가을에 감독직을 수락했어요. 미국에서 야구 공부한 걸 접목하려고 했는데 너무 앞서 갔어요. 만으로 34살이었는데 코치진도 다 선배들이라서 개선하려는 노력에 동조해 주질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인생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때 경험이 해설에도 많이 도움이 되고요.

▲ '90년 블루제이스 마이너리그 코치 시절. 허구연 제공
다시 지도자에 도전해 볼 생각은
현재로서는 전혀 생각이 없어요. 이때까지 계속 감독 제의가 왔지만 다 거절했어요. 일단 우리나라는 감독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아요.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고스란히 바치는데. 승리지상주의인 우리나라 야구 환경에서는 오로지 성적밖에 없어요.
그리고 나는 해설을 통해서 야구를 팬들에게 친근하게 만들고 후배 해설자도 양성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많아요. 분명히 이것도 중요한 분야거든요. 정계나 지자체에 인프라 문제를 얘기해야 하기도 하고요. 현장에 뛰어난 선후배들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이 감독, 코치하면 되는 거에요. 어떻게 보면 야구계에 이렇게 해설하면서 논리적으로 정계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항상 거절했지만 저는 30대부터 국회의원 하라고 계속 정치권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어요. 그만큼 영향력이 있고 제 말을 들어주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떤 인프라를 말하는 것인지
3년 전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야구발전실행위원회 위원장을 하고 있어요. △제9구단, 제10구단 창단 △독립 야구팀 '고양 원더스' 창단 △돔구장 건설 등의 영역에 야구 발전을 위해서 제한 없이 많은 일을 하는 곳이에요. 제가 제안하고 기획하는 일이 많죠. 사회인 야구팀이 경기할 야구장이 부족한 문제도 해결하고요. 예를 들어 이번에 국토부와 논의해서 4대강 유역에 45개 야구장을 만들었어요. 하류 저수지에도 100개는 더 만들 수 있어요. 야구발전실행위원회가 생긴 이후 야구장이 300개로 두 배가 늘었지만, 사회인 야구팀이 2만 개가 있는 상황에선 아직도 턱없이 부족해요. 성균관대도 야구 동아리가 많잖아요. 그런데 왜 뛰어놀 자리를 안 주느냐 이거에요. "왜 똑같이 세금 내는데 축구장은 있고 야구장은 없느냐. 국민 행복추구권이 침해받는다" 이렇게 계속 주창하는 거죠. 그런 작업을 하는 거에요. 참 중요한 일이잖아요.

생활 스포츠를 키워야 하는 이유는

▲ 2008 베이징 올림픽 우승 후. 허구연 제공

요즘 대선을 앞두고 복지 복지 하지만 저는 건강 복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복지는 다 병들고 나서야 어떻게 치료할지 신경 쓰거든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아이들을 튼튼하고 건강하게, 심신을 강하게 키우는 거에요.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 스포츠잖아요. 그런데 정치인들은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체육 예산을 쓰지 않아요. 올림픽 금메달을 몇 개나 획득했는지 따지는 그런 엘리트 스포츠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국민을 위해서 예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알아야 해요.
우리나라 청년들이 체격만 커졌지 체력은 엄청나게 떨어져 있어요. 미국 가서 코치를 1년간 하면서 느껴보니까 우리가 절대 이길 수가 없겠더라고요. 체력 차이가 워낙 나니까. 저도 한 체력 하지만 미국 동년배 코치들을 보면 비교가 안 되더라고요. 미국 대학생들은 프로젝트 하면서 한 달간 밤샘해도 끄떡없어요.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다 몸져누워버릴 거에요. 결국 국력이 약해지는 거잖아요. 정말 체력이 국력인데 정치인들은 그걸 예사로 생각해요.

올해 야구장을 찾은 관중이 700만 명을 넘었는데 그 원인을 어디서 찾는가
단기적인 이유는 베이징올림픽과 WBC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이에요. 국민들이 ‘우리나라가 야구를 정말 잘하는구나!’ 알게 된 거죠.
스포츠산업으로서 야구의 강점을 들자면 첫째, 일주일에 6일을 하잖아요. 그것도 7~8개월 동안 계속. 그러니까 추적이 가능해요.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겼는지 졌는지 그러다가 중독이 되는 거죠. 둘째, 뉴미디어의 덕을 가장 많이 보는 게 야구에요. 케이블 TV에서 전 게임을 중계하고 △인터넷 △DMB △IPTV 등에서도 정말 많이 하죠. 야구 경기를 놓쳤더라도 다 볼 수 있게 됐어요. 야구가 생활 속에 파고들게 되는 거에요. 셋째로 젊은 여성팬들이 많이 늘었어요. 야구팬 중 여성이 40%까지 늘었는데 이게 관중 수 증가에 가장 효과가 커요. 여성팬한테 물어보면 야구도 재밌지만 야구장의 분위기를 좋아한대요. 먹고 마시고 즐기는 미국의 아메리칸 패스 타임처럼 하나의 경향이 돼가는 거죠.

대학생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프로 선수가 성공하고 실패하는 건 기회가 왔을 때 잡는지 못하는지 딱 그 차이에요.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하면 절대 프로로서 성공할 수 없어요. 사람들은 저보고 "야구를 하면서도 영어, 일어도 다 잘하네!"라고 하지만 그만큼 철저히 준비한 거에요. 미국이 야구 제일 잘하고 그다음이 일본이잖아요. 그럼 야구 해설하려면 기본적으로 영어, 일본어는 해야 하는 거거든요. 저는 그 준비를 했고 다른 야구인들은 안 한 거에요. 나는 해외 경기 중계를 해도 영어, 일본어로 외국인 코치한테 질문도 하고 방송도 하잖아요. 거기서 차이가 나는 거죠. 타자가 한 번의 홈런을 치려면 10만 번의 스윙을 해야 해요. 기회를 잡기 위해선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사회라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 위해 대학이라는 마이너리그에서 좋아하는 일을 찾고 열심히 훈련하길 바라요.

◇극일(克日)='일본을 이기자'라는 뜻으로 80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이 내세운 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