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권세진 기자 (ksj4437@skkuw.com)

인터뷰 컨택은 한마디로 ‘똥줄이 타는 일’이다. 인터뷰이의 연락처를 어렵사리 얻어낸다 해도 “바빠요” 한 마디면 기사 하나가 엎어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그래픽 노블 번역가 이규원 씨는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셨다. 그런데 댁이 경상남도 거창이라고 하셔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인터뷰가 성사됐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서 ‘버스로 세 시간 반인데 너무 먼 것 아닌가?’하는 걱정은 금방 저 하늘로 날아가고 말았다. 바로 그날 차표를 예매하고, 카메라와 노트북을 챙겨 거창으로 향했다. 거창과 가까운 대구 고향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아침, 서울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넘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박하사탕처럼 맑고 싸한 거창의 밤 공기가 느껴졌다. 학기 중, 평일 밤 내가 거창이라는 생소한 장소에 혼자 서 있다니. 하늘에 낮게 떠 있는 커다랗고 노란 달과, 도시를 둘러싼 지리산과 덕유산의 컴컴한 그림자 때문에 어쩐지 비현실적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규원 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서 포도농장을 하고 있다며 포도즙 한 상자를 주셨다. 묵직한 포도즙 상자를 가슴에 안고 집에 가니 우리 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거창, 달밤, 포도즙, 고향, 할머니. 인터뷰가 선물해 준 한 편의 동화 같은 하루였다.

아무리 교통이 발달해 전국이 하루 생활권이 됐다 해도, 서울에서 거창으로, 거창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던 그 하루는 지금 생각해도 비현실적이고 꿈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청춘이네”라고 말한다. 나 역시도 내가 젊고 에너지가 넘치니 슈퍼맨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 저편으로 고무줄처럼 튕겨져 나갔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체력이 있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인터뷰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거창의 몽상적인 밤 풍경을 마음 속에 담아올 수도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튼튼하니까 청춘이다. 포도즙을 먹고 더 건강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