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현 철학과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생물종 다양성 보존의 날”(International Day for Biological Diversity)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아는가?

2000년 12월 브라질에서 열린 지구환경정상회의에서 생물종 다양성 보존을 위해 제정한 날이다. 왜 이런 날이 제정되었을까?

생물학적 다양성이 도대체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 같은 것이라는 인식은 생물학자에겐 기본 상식이다. 쉽게 도식적으로 생각해보자: A라는 개체는 유전인자 a+a+a로 이루어져 있고, B라는 개체는 a+b+c로 이루어져 있다고 치자. 그런데 환경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겨 유전인자 a에서 기인하는 모든 유기적 기능은 작동불능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개체 A는 죽음을 면치 못하지만, 개체 B는 온전치는 못하나 그런대로 살아남는다.

이 논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장시켜보자. 농부A는 옥수수 수요가 급등하는 것을 알고 자신의 소유인 초지를 몽당 갈아엎어 옥수수 밭을 일구었다. 옥수수 수확으로 큰 이득을 본 농부는 득의만만했다. 그러던 어느 해 옥수수에 치명적인 병충해가 그 밭을 뒤덮었다. 옥수수 밭은 여지없이 황폐해졌다. 그의 소유지 전체가 불임의 땅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웃의 다른 농부B는 소유지의 절반은 그대로 초지로 남겨놓아 대대로 이어오던 목축 일을 했고, 나머지 땅에도 옥수수, 보리, 밀 등 여러 작물을 가꾸었다. 수입이 농부A 같지 않아 크게 기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옥수수 병충해가 휩쓸고 지나가던 그 해에도 그는 크게 절망할 일이 없었다. 그는 목축에서 오는 이득과 옥수수 아닌 다른 작물의 수확에서 얻는 이득으로 평년과 크게 다름없는 한 해를 보냈다.

각각의 생물 종은 그 자체가 생명의 궁극적인 원천이라는 내재적 가치를 갖는 것이기도 하지만, 식량, 의약품, 공산품의 재료를 비롯한 다양한 경제재로서, 그리고 인간의 삶을 위한 환경의 구성요소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만 5000에서 5만 종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 선각자들이 “생물종 다양성 보존의 날”을 선포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당장의 내 이익이 아닌, 장래 인류의 생존을 배려한 조치라 할 것이다.

요즈음 “세계화”(Globalization)의 물결은 대학의 연구와 학업에도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그 변화 가운데는 바람직한 것, 불가피한 것도 물론 있지만, 숙고와 반성 없이 “대세”라는 미명 아래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도 있다. 이른 바 “국제어 강의”의 무분별한 확산이 그런 것 중의 하나다. 말이 “국제어”이지 실은 영어가 그 대부분이다. 독문학 강의도 영어로 하고 유학철학 강의도 영어로 해야 할 판이다. 21세기 디지털 문명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마당에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 전달의 중심 매개어가 대부분 영어인 것이 화근이다. 영어를 구사할 수 없으면 이제 세계인이기 이전에 한국인으로서도 성공적인 직업활동 및 사회활동을 하기가 어렵게 된 현실이 대학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의 매체라고 생각하는, 언어학 및 언어철학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학에도 꽤 많은 모양이다. 하나의 언어에는 장기간에 걸쳐 온축되어온 문화의 정수가 담겨 있다. 문화적 유산의 보고요, 공동정신의 구현체다. 한 개인은 그 언어를 씀으로써 비로소 그 나라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 나라의 역사에 편입되는 것이다. 아니, 그 언어를 사용하여 그 문화의 자양분을 섭취함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연적 상태의 동물에서 문화적 상태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에 언어는 필수적인 토대요 영양원이다. 모국어는 그래서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이라도 모국어에 녹아들어가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 삶을 움직이는 힘을 갖지 못한다.

전인류가 모두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할만큼 “세계화”가 진행되었다고 치자. 영어에 담겨있는 세계상, 가치관, 인간관이 더 이상 개인이나 공동체의 생존 번영을 이끄는 힘을 잃게 된다면, 이제는 영국 미국인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퇴보와 쇠멸의 길로 접어들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한 옥수수밭 주인처럼 말이다. 왜 “언어 다양성 보존의 날”은 제정되지 않고 있나? 머지 않아 그런 선언이 나올거라고? 성균관대학교에서? 그러길 바라는 게 그저 백일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