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영재 편집장 (ryuno7@skkuw.com)

“당연하지.” 자연과학에서나 쓰여야 마땅한 단어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부터 “회의에서 쓸데없는 감정 표출을 하면 안 된다”는 실용적인 조언까지, 당연한 것이 너무 많다. 앞의 두 문장 중 진짜 당연한 것은 몇 개일까? 2개? 혹은 1개? 아니면 하나도 없을까?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성적, 혹은 객관적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쓰인다. 그렇다면 먼저 진부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인간은 합리적인가? 여러분 주변의 많은 사람을 볼 때도 느낄 수 있듯이, 아닐 것이다.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가정이야말로 논리학에서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혹은 사회과학에서의 ‘환원주의적 오류’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신 필연적으로 개체가 속해 있는 사회(좁게 보자면 교육)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아무리 교육을 받고 성찰을 해도, 이성의 완벽한 구현을 이루는 건 하느님을 대면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회의에서의 감정 표출이 쓸데없다는 것조차 이성이 신격화되면서 나타난 문화다. 아마 회의의 신속하고 정확한 진행을 막아 의사소통을 어렵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들 공식석상에서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꼴불견으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그러나 감정표현보다 더 악질적으로 회의를 가로막곤 하는 태도가 있다. 자신의 의견이 타인의 그것보다 대단히 우월한 논리를 갖고 있다고 여기며 절대로 굽힐 줄을 모른다. 더 나쁜 경우에는 자신의 의견이 타인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넘어가면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빈정대는 태도로 회의에 임한다. 또한 상대방의 의견에서 핵심을 추출해내지 못하고 부수적이거나 아예 쓸데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이런 태도를 보이며 회의를 망치는 이에 대한 일갈 한 번이 맹목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행동일까? 오히려 자기 나름대로 이성적으로 대하겠답시고 조곤조곤 상대했다간 그와 함께 쳇바퀴를 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는 이렇듯 이성이나 팩트가 그저 공기의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럴 때마다 자주 떠올리는 에피소드가 있다. 예전에 기자 직함을 달고 취재를 다닐 때 몇몇 취재원이 했던 말로부터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의자를 뒤로 젖히며 “사건의 본질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기자는 팩트(fact)를 써야 한다. 그런데 내가 당신 선배들이 쓴 기사에서 피해를 본 적이 있어서? ”라고 말했다. 충격적이었다. 맨 먼저 추론한 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만을 진실로 믿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개 자신의 의견이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화법 중 하나는 팩트라는 단어를 밥 먹듯 사용한다는 점이다. 니체는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진실은 단지 주관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사실 이 인용문은 자기부정이므로 역설이지만, 의미가 전달되는 것만으로 이 문장은 존재 가치가 있다). 더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진실은 없다.
또한 그들은 이 기자가 선배로부터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행동을 반복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비록 정말 선배가 실수를 했다고 하자. 그리고 필자를 비롯한 기자들은 그런 선배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렇다면 피교육자는 그러한 행동을 답습할 확률이 높은가? 우리는 자랑스러운 명문 성균관대학교에 당당하게 입학한 학생들이다. 속된 말로 대한민국 1%로까지 불리는 우리마저, 그들의 시각에 따르면 불과 몇 달만의 교육에 곡필을 밥 먹듯 하는 자가 된다는 뜻이 아닌가. 이는 그들이 치켜세우는 이성과 객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었다. 따지고 보면 교육(사회화)을 더 많이 받은 쪽은 취재원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진실과 팩트를 논하는 것인가’하는 반발심이 드는 건 당연했다.
이번 학기에도 훌륭한 수습기자들이 많이 선발됐다. 그들 역시 취재를 다니며 군데군데 미숙한 점을 드러낼 것이다. 이를 알아챈 능숙한 취재원은 객관과 팩트라는 단어를 사용해 기를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용기를 가지길.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객관과 팩트는 존재할 수 없다. 차라리 인위적인 허구에 가깝다. 그들이 강요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포장돼있다. 그러나 정작 내면을 보면 그 개인 혹은 소속 집단의 이해관계와 주관에 근거할 가능성이 높다. 당연하다는 말의 함정에 속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