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영재 편집장 (ryuno7@skkuw.com)

지난달 한 학보사 기자가 유명 일간지의 칼럼을 80% 이상 표절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실은 해당 학교 대자보를 통해 처음으로 문제로 제기됐다. 이후 학보사 측은 사과문을 통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표절을 인정했다.
물론 상황의 어려움이 도덕적 문제를 덮을 수 없다는 점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처참하고 열악한 최근 학보사의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필자는 해당 기자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학보사끼리 교류하며 만났고, 개인적으로도 편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해당 학보는 소속 인원수보다 신문 페이지가 더 많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외부에서 두루 좋은 평가를 받는 신문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때문에 필자가 받은 충격은 배가됐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지인을 팔아먹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쓰라리다.
열악한 상황은 국소적이지 않다. 오늘날 학보의 입지는 예전과 비교했을 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다. 학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해왔다. 학보가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인 50~60년대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학보는 대학 내의 사회운동과 학술적 흐름을 훌륭하게 대변하는 매체였다. 그러나 학생운동이 쇠퇴기를 맞이함과 동시에 학생자치도 무의미하다시피 뒤로 밀려났다. 학생자치와 상생관계를 이루던 학보 역시 90년대 중후반부터 자연스럽게 쇠퇴기를 맞이했다. 대부분의 학보사가 이때부터 예산이 동결 혹은 삭감되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좌편향적이라는 지적도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산 삭감이나 좌편향이 문제가 아니었다. 학보는 알게 모르게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었고, 지금도 침체는 진행 중이다.
2000년대부터 학보는 독자적인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한 채 기성 일간지와 거의 동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신문시장에서 각 신문사는 심층보도 저널리즘을 갈수록 날카롭게 갈고 닦아 존재가치를 만들어나갔다. 그런데 학보를 만드는 주체는 일간지 기자들에 비해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학업까지 병행하며, 시의성을 갖추기 어려운 주보(週報)를 무대로 활동하는 학생 기자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보는 학내 사안에 중점을 두어 콘텐츠의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결과는 보다시피 참패였다. 구성원이 2만 명도 채 안 되는 공동체에서 역동적인 사회 흐름이 있을 리 없었다. 학보들은 점점 일간지 기사와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활용하기에 급급해졌다. 이제 일간지와 별다를 것 없는 콘텐츠에 신문의 질도 비교적 떨어졌다. 학우들은 학보를 집어들 이유가 없어졌다. 학보에 대한 평가절하는 예산 삭감과 더불어 수습기자 지원 수 감소, 인력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근원이었다.
‘대학언론의 위기’라는 주제는 10년 넘게 이어져온 케케묵은 것이 됐다. 외부에서 대학언론을 바라보고 제시하는 해결책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독자층 확대를 통한 광고수입, 기자단의 학보사 직접경영 등은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처방이다. 필자도 2년 넘게 본지에 글을 쓰고는 있지만 누군가 읽을 것이란 자신이 없다. 부끄럽다. 하지만 냉정한 자아비판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 칼럼 표절 사태가 결코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표절만 하지 않았을 뿐, 필자를 비롯한 학보사 기자들은 얼마나 무가치한 글을 지면에 쏟아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