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우(화공11)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몇 년 전 부터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겸손하고 소극적이며 자신을 잘 감추던 모습에서 당당하고 적극적이며 개방적인 것이 미덕으로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현실에 보다 타협적으로 살고 있다. 이는 무척 좋은 현상이다. 자칫 자신이 놓칠 수 있었던 이익들과 보상들을 잃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점점 그 강도가 세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내 기분 탓일까? 사람들이 갈구하고 있는 그 권리라는 것은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다. 사회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살아가는 현실에서 지극히 주관적인데다가 개개인마다 개념이 다른 이 권리라는 것이 한 두 명의 사람이 아닌 몇 십, 몇 백, 아니 몇 천 명의 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 있을까? 나의 생각은 당연히 ‘NO’다.
최근에 학교에도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다. 각 학부/과마다 학생회비 분배에 관한 문제라던가 학교의 특성인 캠퍼스 간의 오해 및 다툼 외에 여러 사건 등. 겉으로는 특정 집단들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집단에 속해있는 개개인의 ‘권리’를 추구하는 데에 따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권리 추구, 말로만 봤을 때에는 참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갈구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간다면, 그것은 정말로 내가 ‘추구해도 되는’ 권리 일까? 타인의 미간에 주름을 짓게 만들면서까지 추구해야 되는 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건 단지 권리의 탈을 쓰고 있는 욕심에 지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탈을 쓰고 있는 욕심을 권리로 착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항상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이 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나오는 뻔한 답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와 같은 이상적인 상황이 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학교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취업 준비를 해주면 어떤가, 그깟 연예인 못보고 빵조각 하나 못 받으면 어떤가,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다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단지 동물적인 탐욕에 불과하다. 어린 시절 도덕시간에나 배울법한, 아무도 공부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사고방식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