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기진 기자 (skkujin@skkuw.com)

이번 제18대 대선의 키워드는 ‘복지’다. 유력 대선 후보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복지 증진을 외치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후보들은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재정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공약 제시를 통해 신뢰를 형성하는 ‘매니페스토 선거’가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구체적 방법 명시하는
‘매니페스토’ 공약
민주주의 선거 한계 보완해나가

매니페스토(manifesto)란 ‘당선 후에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공약’이라는 뜻으로 △구체적인 목표 △실현 방법 △실현에 필요한 기한 △재원 조달 등을 포함하는 정책이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들이 매니페스토 공약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이 이를 검증할 수 있도록 선거 문화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매니페스토가 기존의 공약과 다른 것은 단순히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 철학 △그에 따른 핵심 공약 △우선적으로 실천할 공약을 명확히 알려주는 것이다. 즉 선거 이후에도 실행에 책임을 지는 공약이다.
1834년 영국의 로버트 필 보수당 당수가 “겉만 번지르르한 공약으로 선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매니페스토 운동의 출발이다. 이후 1997년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선거에서 거짓말로 표를 얻지 않겠다는 증거로 매니페스토 도서를 발간하면서 매니페스토는 미국, 일본 등 전 세계로 확산됐다. 

2006년 지방 선거부터 도입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약 중심 선거로 발전 중

한국의 매니페스토 운동은 시민의 주도로 시작됐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시민사회가 주도하고 있던 기존의 낙천·낙선 운동은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에 많은 지적을 받고 있었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이를 보완하고 선거 문화와 정치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았고,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매니페스토 열풍을 일으켰다. 그 후 출범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사무총장 이광재, 이하 본부)는 출범 이후 △정당 공천 서류 개선 △매니페스토 정책 선거 협약식 추진 △공직선거법 개정 등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매니페스토 선거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는 전국에서 300여 명의 대학생을 선발해 ‘매니페스토 SNS 대학생 기자단’을 발족시켰다. 기자단은 선거 기간 동안 해당 지역구의 후보를 검증하고 이를 기사로 작성해 SNS를 통해 공유하는 역할을 했다.
주요 정당들은 2010년 6·2 지방선거부터 공천 신청 서류에 매니페스토 실천 계획서를 포함시켰다. 이는 입후보자들에게 매니페스토 운동의 의미를 각인시키는 기회가 됐지만, 계획서를 주민들에게 공개하지는 않아 효과가 반감됐다. 또 매니페스토 운동이 시작된 이후 시행된 모든 선거에서는 ‘매니페스토 협약식’이 개최됐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전에 실시하는 이 행사는 후보자뿐만 아니라 지역 언론사, 주민들에게도 이 운동의 중요성을 알리는 기회가 되고 있다. 
자신의 매니페스토 도서를 소개하고 있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 / ⓒlain Dale

2008년 개정된 매니페스토 관계법은 △대통령 △광역자치단체장 △기초자치단체장 △교육감으로 하여금 매니페스토 공약집을 발간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많은 공직자가 이를 이행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이 법안의 대상이 아니지만, 공약 이행률이 35%로 저조했던 18대 국회는 지난 총선에서 재선율이 38%에 그쳤다. 이광재 사무총장은 “유권자들은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후보를 응징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움직임이 매니페스토 운동의 시발점이라 본다”고 말했다.

총학 선거 해결책 될 수 있을까
‘작은 정치’로 불리는 대학 내 선거에도 기존 정치권 못지않게 선심성 공약이 선거를 멍들게 하고 있다. 2010년 울산대 총학생회(이하 총학) 선거에서 ‘태블릿PC 전원 무상 지급’ 공약을 낸 총학이, 작년 우석대에서는 ‘성형수술 지원’ 공약을 낸 총학이 당선되면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매니페스토 선거는 이런 현상에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선심성 공약을 배제하면서도 유권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고, 당선 후에도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공약을 이행할 수 있어 선거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6년 카이스트 21대 총학 선거에서는 매니페스토 공약을 적용한 총학이 당선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학보사 <외대학보>의 김준우 카이스트 21대 총학생회장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총학은 △예산연구 △유권자 설문조사 △인터뷰 등 장기간의 공약연구를 거쳐 당시 학교의 문제점과 건의사항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전대 총학 경험이 있던 상대방보다 기반이 약했지만, 학생들로부터 점차 매니페스토 공약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고 결국 20% 득표율의 차이로 당선됐다.
본부는 학내 정치에서 매니페스토 선거를 권장하기 위해 <외대학보>와 함께 ‘대학 총학 선거를 위한 매니페스토 선거 가이드북’을 제작해 지난 10월 19일 배포했다. 가이드북에서는 매니페스토를 △학생 후보자 △학생 유권자 △학내 언론의 관점에서 해석해 매니페스토를 학내 선거에 적용하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했다. 김현식(기계07) 자과캠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연석 중운에서 이미 회칙이 정해진 상태라 매니페스토 선거를 강제할 수는 없다”며 “그렇지만 바람직한 선거를 위한 방법임은 분명하므로 입후보자들에게 권장하는 방향으로 고려하겠다”고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