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이불은 세계적인 설치미술가다. 그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름처럼 파격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 왔다. 그가 지난 97년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 날생선에 구슬을 꿴 <화엄>이라는 작품을 내 미술관과 마찰을 빚은 일화는 유명하다. 미술작품에 시각적 효과뿐만 아니라 생선이 썩어감에 따른 후각적 효과까지 끌어들여 평단에 충격을 줬다. 그 후로도 그녀는 전 세계 각지에서 전시회를 열며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회·문화적 현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시각을 유지해 왔다. 그는 △사이보그 △아나그램 △나의 거대 서사 등 다양한 주제로 전시활동을 했지만, 그 기저에는 언제나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권력의 실체를 파헤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이번 네 번째 개인전을 열기까지 20년간 밟아온 이불의 족적을 주요 주제를 통해 탐구해봤다.

<히드라 - 모뉴먼트> / ⓒ이불

초기 - 페미니즘과 퍼포먼스
대학 졸업을 전후한 시기, 이불은 페미니즘과 여성의 몸을 매개로 사회 전반에 깔린 가부장적 시각을 파헤친다. 조소과를 졸업하고 설치미술을 계속해온 이불이지만, 이 시기에는 퍼포먼스가 결합한 형태의 미술을 선보이는 일이 많았다. 직접 만든 괴물 옷을 입고 일본 거리를 12일간 돌아다녔고,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뒤를 닦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이불은 음식물 찌꺼기, 날생선, 빵 같은 보잘것없고 유한한 재료를 사용해 도발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 속의 유한성을 잔인한 이미지로 드러낸 것이다.

<화엄> / ⓒ이불

반짝이를 생선에 장식한 후, 그 썩어가는 냄새까지 전시한 작품 <화엄> 또한 그가 이 시기에 몰두하던 시리즈의 일환이었다. 천에 수를 놓듯이 구슬을 날생선의 살에 꿰매는 행위는 살을 옭아매는 통각과 여성에 가해지는 억압을 암시한다. 한편 ‘화엄’은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꾸민다는 의미로서 우주 만물의 끝없는 연계성을 일컫는 불교용어다. 온갖 대립과 분별이 사라진 이상적인 불국토를 나타내는 단어기도 하다. 이 단어는 아름다움과 추함, 구슬의 영원성과 날생선의 유한성과 같은 극단을 강조함으로써 그 일원성을 보인다는 역설적 의도를 나타낸다.

<사이보그> / ⓒ이불
중기 - <사이보그>, <몬스터>, <노래방>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이불은 디지털 문화와 여성의 몸으로 인식을 확장시킨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페미니즘보다 더 확장된 의미를 담고 있다. 대중문화와 디지털 시대 이면의 다각적인 권력구조를 나타냈다. 실리콘과 하얀 안료로 만들어진 <사이보그> 조각 연작은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성의 몸과 기계를 결합한 형태다. 모든 조형물은 팔다리와 머리가 잘린 기형적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테크놀로지의 한계를 나타낸다. 또한 성별이 없는 사이보그가 굳이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하는 것은 테크놀로지의 진보 속에서도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재생산되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었다.
실패한 사이보그를 상징하는 <몬스터> 시리즈는 촉수가 어지러이 뻗어 나온 모형들이다. 완전함과 강함이라는 키워드로 인식되는 남성의 몸에 비해 불완전하며 불안정한 존재로 인식되는 여성의 몸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불은 이 일련의 작품 활동을 통해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사이보그의 재현양식을 조명하고, 그 안에 숨은 모더니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을 해체하려 했다.
사이보그 담론이 좀 더 진화돼 나타난 것이 1998년부터 시작한 <노래방> 연작이다. 꽉 닫힌 캡슐에서 노래를 부르고 영상물을 보는 일상적 행위의 생경함을 부각시켰다. LCD화면은 통상적으로 대중매체가 남성의 시각으로 본 여성을 그리는 데 반해 카메라(남성의 시각)를 여성들이 가지고 노는 장면을 통해 ‘응시의 성(性)정치’를 전복해보려는 의도였다.

이번 이불 개인전에 전시된 지금까지의 설치 작품 드로잉 / 김신애 기자 zooly24@
현재 - <나의 거대 서사>
저항과 신랄한 비평을 골자로 하던 이불은 2005년에 또 하나의 파격을 꾀했다. 바로 ‘유토피아의 이면’에 집중하며 비판보다는 공감을 추구한 것이다. 그는 동서양의 이상적 건축물의 모형이 기이하게 결합한 형태의 3차원 모형들을 생산해 냈다. 사이보그 연작으로부터 이어진 이상의 좌절에 대한 관심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모든 유토피아에의 열망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며, 실패한 이상적 세계에 대한 구체적 상징물로서 기괴하게 뒤틀린 건축물을 택했다.
이불의 이런 작품 활동은 지진, 방사능 유출을 겪은 일본인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의 일본은 바로 핵발전과 높은 마천루를 꿈꿔온 인간의 이성적 문명이 재앙을 불러낸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모리미술관에서의 전시가 그토록 성공적이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