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언론정보대학원 문화컨텐츠전공 석사 3기 허소민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기획 의도: 세상 도처에 흐르는 음악이란 어떠한 방식으로든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거나, 음악에 깊은 조예가 있다고 해서 향유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해주는 세 편의 인물들에 관해 스케치 형식의 기획기사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노인 합주 음악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이승동 강사, 두 번째, 폐타이어 연주가 강천호 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부밴드 해오름밴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Ι. 음악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젊다

어떤 이는 종을 울린다. 어떤 이는 북을 친다. 그리고 어떤 이는 나팔을 분다. 흰 백발은 리듬에 맞춰 흩날리고, 이미 얼굴에 자리 잡은 주름은 웃음과 함께 더욱 깊어진다. ‘음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이라는 교집합을 만들고 있는 이들을 지켜보노라면 잔잔한 감동이 밀려든다. 비단 연주하는 음악이 단순한 트로트 멜로디에 불과할지 몰라도 그 어떠한 ‘복잡하고, 수준 높은 음악’보다 위대하다.
인천시 송현동에 위치한 동구노인문화센터의 목요일 3~5시는 매우 분주했다. 문틈 사이로 섣불리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열정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단 한 소절의 박자를 맞추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율동을 불사르는 이승옥 강사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눈을 감고 들으면 여느 아이들의 연주처럼 단순하다. 하지만 눈을 뜨면 무언가 특별한 감흥이 전달된다.
이승옥 강사는 자신이 부모님으로부터 ‘음악’과 ‘가르침’이라는 두 가지 달란트를 받은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소명의식을 아름다운 취지에 담고 있었다. 마치 놀이처럼 누구나 쉽고 즐겁게 느낄 수 있는 음악 수업이 본 강의의 근본적인 목표다.
어떠한 집단이든 개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르치는 입장에서 고충이 따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본인보다 많은 나이의 사람들을 상대한다는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승동 강사가 디테일하게 설명을 해도 제자리걸음인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지레 겁이 나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이렇게 극복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어르신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답답해하면 그 마음을 영락없이 알아챈다고 한다. 그 알아채는 마음을 통해 이승옥 강사는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을 경험하고 나면 마치 학창시절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난 뒤 밤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쳐다볼 때처럼 뿌듯한 감정이 든든하게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를 또다시 역동케 한다.
연주자의 길을 중도 포기하게 되었지만 자신이 받은 또 다른 달란트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나누고 있는 이승동 강사. 약 10년간 초등교육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느낀 음악을 이들이 느끼고 표현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의 해답을 실현코자 매진해왔다. 그리고 이 해답을 이제는 노인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다.
점차 노인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 노인문화예술교육은 또 다른 등불이 되고 있다. 특히 교육에 대한 이들의 선택은, 누군가에 의한 형식적인 교육이 아닌 ‘자발적인 참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순수한 개인적인 욕구에 의한 선택이 아름다운 음악 안에서 많은 이들과 함께 어우러질 때 그 의미와 감동이 배가된다는 사실을 지난 현장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기도 했다.

Ⅱ. 인생과 닮은 타이어, 버려지기 전
‘그 순간’ 음악으로 재탄생 되다

2005년 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한 장애우의 차량이 타이어 수리를 위해 긴급히 정비소에 방문했다. 그런데 그 차를 보는 순간 무언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되었다고 전하는 주인공...
바람을 주입하던 중 우연찮게 타이어에서 소리가 나더라. 재미삼아 시도해보았는데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7개의 음계가 분명히 들리는 것을 발견했다. 시도는 ‘우연찮게’, 과정은 ‘재미삼아’ 실행했는데, 점차 소문이 퍼져 이제는 일명 ‘폐타이어 연주가’라는 독특한 수식어가 이름 앞에 하나 더 붙었다. 그 전에는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한 정우카서비스의 업주 강천호였을 뿐이다.
그간 강천호 씨는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어 써야 할 만큼 분주한 일상을 보냈다. 특히 트로트 가수 장윤정 씨의 대표곡 ‘어머나’가 히트를 치던 무렵, 설날특집 무대에서 장 씨와 함께한 뒤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언론의 조명을 한 몸에 받았고,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그러나 20년째 몸담고 있는 정비업이 본업이긴 본업인지라, 현재 연주 제의는 적정선에서 조절 중이다.
사무실 한 켠에 자리 잡은 기타, 미니 전자드럼, 키보드. 누군가의 손을 여러 번 거쳐 간 듯 보이는 이것들로부터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음악에 대한 깊이는 그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폐타이어 연주는 단순히 신기한 음악이 아니었다. 타이어의 역사와 강천호 씨의 혼이 담겨져 있다.
“타이어의 생을 마감해서 버려지는 것이 폐타이어입니다. 그 폐타이어는 분쇄기에서 부서지고 다시 재생되어 새 타이어가 되죠. 바로 분쇄기에 들어가기 직전, 생을 마감하기 직전, 나의 손에서 연주 된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데요, 그 타이어에는 그것만의 역사와 의미, 모든 것이 담겨지게 됩니다.”
이것은 새 타이어에서는 거론될 수 없는 차원의 이야기다. 그 타이어 자체의 역사와 의미, 더불어 강천호 씨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지게 된다. 특히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
그의 속내를 알고 난 뒤 연주를 들으니 소리가 더욱 애절하고 차진 느낌이다. 음향적으로는 서양악기 트럼펫처럼 위풍당당하다. 그리고 때로는 국악 현악기 해금의 구슬픈 멜로디 라인이 연상된다.
동물원에서 연주하자 어린이들이 기뻐했다. 경로당에서 연주하자 노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바로 그 순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단 한 번의 음악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Ⅲ. 진정한 아마추어는 프로보다
아름답다, 주부 파워 <해오름밴드>!

음악이 단지 ‘듣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그렇지가 않더라. 음악이란 ‘내가 할 수 있는 것’, ‘남들에게 들려줄 수도 있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해 ‘나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함께 행복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킨 계기는 ‘음악 안에서의 만남’이다. 결혼, 출산이라는 여성으로서의 인생 제 2막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이들에게 ‘음악 안에서의 만남’은 새로운, 그리고 특별한 제 3막 시나리오를 작성하게끔 종용했다.
그 만남으로부터 지금껏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민과 함께하는 콘서트 7080, 서정동 어르신 모시기 큰잔치, 평택 평화 문화 예술 축제, 해오름밴드 정기음악회, 평택항 실크로드국제마라톤대회 축하공연, 본보 주최 평화 록 페스티벌 공연, 사랑의 7080 자선 음악회, 수원 화성문화제 공연, 지역주민을 위한 동네방네 음악여행, 음악속의 평택호반(평택호 특설무대) 등 수많은 공연을 통해 시민들과 호흡해 왔다.
평택시에서 유명세를 타자 소문이 번져 전국구로 활동하기에 이르렀으며, TV 프로그램, 라디오의 출연 제의도 받게 됐다. KBS-1 <TV 문화지대> 아줌마의 재발견 출연, CBS 라디오 <뉴스매거진 오늘> 출연,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출연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주부밴드로 평택시의 강하고 멋진 아줌마 파워를 전국에 널리 알리고 있는 ‘해오름밴드(단장 김창웅)’에 관한 이야기다.
해오름밴드의 인터넷 까페는 회원수가 600명이 넘고, 골수팬까지 생겨나 밴드의 무대를 고대하는 이들이 적잖다. 2004년 창단 멤버로 지금껏 밴드의 왕언니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리더 이춘희 씨는 해오름밴드의 기억과 추억들을 모두 기록하고 있는 인물이다. 봉사를 목적으로 구성된 드럼, 기타, 베이스의 트리오 밴드가 해오름밴드의 시조다. 이후 보컬이 합세하고 점차 증원한 결과, 지금은 이진순(기타), 강성미(키보드), 조현진(피아노), 조미애(드럼), 강문영(보컬), 염정미(보컬), 허성예(보컬), 임수정(보컬), 임진주(보컬), 박혜숙(드럼) 씨 등이 이춘희 씨와 동행하게 됐다.
“해오름밴드의 입단은 나 인생의 터닝포인트”라 전하는 이들은, 힘든 일이 있어도 연주를 떠올리노라면 힘이 저절로 솟구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노래를 좋아하면서,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남들보다 기회를 덜 받는 불우한 이들의 결핍을 메꿔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들의 의욕은 충만해진다.
여성, 특히 주부들은 공감대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사교, 만남을 갖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단발성의 무의미한 만남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들은 지속적인 ‘음악적 교감’을 통해서 삶에 유의미한, 진취적인 만남을 이어나아가고 있다.
해오름밴드는 특별하다. 평범하게 살 수도 있었던 이들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해오름밴드는 소중하다. 다소 늦은 만남이기에 더욱 귀하다. 특별함과 소중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자신들이 받은 감사를 봉사와 나눔으로써 실현하려는 이들의 넉넉한 마음 때문인 듯하다. 이들을 보면 한 문장이 떠오른다. 진정한 아마추어는 프로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