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기자명 권세진 기자 (ksj4437@skkuw.com)

낙원악기상가에서 서울아트시네마 입구로 이어지는 통로 / 권세진 기자 ksj4437@
“영화를 궁전에 모시는 사람들은 프랑스인뿐일 것이다.” 영화 <몽상가들>에 나오는 프랑스의 미국인 유학생 매튜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ematheque Francaise)’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화라는 예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기에 궁전에 모신다는 것일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옛 프랑스 궁전인 샤요 궁(Palais de Chaillot)에 있던 문화공간으로, 지금은 파리 12구의 베르시 공원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네마테크란 영화의 박물관이자 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영화인들의 기억 중추를 담당하는 장소다. 잊혔다 여겼던 과거의 영화들은 뽀얀 먼지를 털어내고 복원과정을 거쳐 다시 상영 가능한 필름으로 탈바꿈된다. 현재도 수많은 감독의 ‘대중적이지 못한’ 작품들을 입수해 상영한다. 미래의 거장이 될 영화학도들은 상영관 맨 앞자리에 붙박이처럼 앉아 꿈을 꾼다.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과거요, 현재요, 미래인 것이다. 1936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시작된 시네마테크 설립 운동은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로 퍼졌고,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몇몇 곳이 운영 중이다.
먼지 쌓인 고서적이나 자질구레한 옛날 물건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즐비한 인사동 네거리, 노랗게 빛바랜 4층짜리 낙원상가 건물은 악기점만 늘어선 공간이 아니다. 꼭대기에는 ‘허리우드 클래식’이라는 옛날식 간판이 걸려있다. 그 옆에 앙증맞은 글씨로 적힌 ‘서울아트시네마’가 극장의 존재를 알린다. 언뜻 보고 지나가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작은 간판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한국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로,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달리 상영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각종 영화제 등 문화 활동과 영화 교육, 고전 필름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달 9일까지는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이 열린다. 아녜스 바르다의 <아녜스의 해변>, 장 뤽 고다르의 <필름 소셜리즘> 등 최근에 소개된 주목할 만한 프랑스 영화들이 상영된다. 이밖에도 청소년 대상 영화 교육 프로그램인 ‘영화관 속 작은 학교’를 매달 열고 있기도 하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거의 1년 내내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에 *시네필 관객들이 많이 찾는다.
멋진 베레모를 쓰신 노신사 조상희 씨(63)는 신문에 종종 영화평을 기고하기도 했던 시네필이다. 그는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곳이라 자주 온다”며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60, 70년대에는 외국 대사관 문화원에서만 틀어주던 각 나라의 영화들을 만화경처럼 다시 들여다볼 기회를 주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찾는다.”
사람은 그가 찾는 공간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시네필과 시네마테크의 관계 또한 이러하다. △에릭 로메르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모여 영화에 대해 격렬히 논쟁하던 청년들은 후에 프랑스 영화 누벨바그(Nouvelle Vague)를 이끌었다. 누벨바그는 ‘New Wave’, 즉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이다.
△김지운 △류승완 △박찬욱 등, 지금은 우리나라 대표 감독이 된 사람들이나, 정성일 등의 유명 평론가들도 청년 시절 이러한 공간을 갈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네마테크가 없어, 비디오를 틀어주는 ‘비디오테크’, 외국 대사관 문화원이 이들에게 영화적 몽상의 터전을 제공했다. 지금은 서울아트시네마가 시네필과 영화학도의 안식처 역할을 물려받았다. 어두운 상영관 속에서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아늑하다.

*시네필=영화광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Cinema(영화)’와 ‘Phil(사랑하다)’을 합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