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기자명 나영인 기자 (nanana26@skkuw.com)

▲ 나영인 기자 nanana26@skkuw.com
진실의 힘, 와락, 광주 트라우마 센터. 사회 권력에 상처받은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녀가 있다. 바로 '거리의 의사' 정혜신 박사다. 마인드 프리즘이라는 상담센터의 대표이기도 한 그녀는 대기업 CEO부터 노동자까지 다양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한다. 유난히 따뜻했던 지난 22일 바쁜 와중에도 점심시간을 할애해 인터뷰를 허락해준 정혜신 박사를 그녀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나영인 기자(이하 나) 정신과 의사를 꿈꾸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정혜신 박사(이하 정)
처음부터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어린 마음에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가 돼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대에 들어가 보니 사람의 신체를 다룬다는 것이 나와 맞지 않았다. 교육의 목적이었지만, 감정을 배제한 채 사람의 신체를 훼손하는 해부의 경험은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래서 사람의 신체를 다루지 않는 과를 가고 싶었고, 정신과를 선택하게 됐다.

나 사회 권력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1998년부터 여러 신문에 칼럼도 기고하면서 사회적인 발언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회적인 피해자들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05년 국회 청문회에서 진도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박동운 씨를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갈 구체적이고 생생한 동기가 생겼다.

나 피해자들의 고통이란 어떤 것인가
매주 하루는 광주 트라우마 센터에서 5.18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을 하고 있다. 그 분들은 친구가 대검에 찔려 죽는 모습을 봤거나 고문당했던 사람들이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들의 마음은 당시 유혈이 낭자했던 그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것이다. 상처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정신적 피해가 광범위한 것이 방사선 피폭과 같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 아예 상담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 피해자들이 상처의 기억들을 되살리는 것을 두려워할 때는 어떻게 하나?
상담할 때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 피해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이때는 ‘치유적인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가 수술할 때 소독을 하고 장기를 다루는 것처럼 심리적인 무균상태에서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 치유적인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하게 된다면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다.

나 어떤 방법으로 치유할 수 있는지
특별한 위로의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전쟁 중인 피해자들의 마음에 같이 참전하는 것뿐이다.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면서 그들의 생생한 감정에 '머물러 준다면' 그분들은 요동치는 감정의 파도에서 자신을 건져 낼 수 있다. 혹자는 그렇게 극단적인 상처가 상담을 통해 치유될 수 있느냐 묻지만 사람의 마음에 같이 머물러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위로가 된다.

▲ 작년 5월 1일 정혜신 박사가 노동절을 맞아 쌍용차 노동자를 대상으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심상정

나 사회 권력에 상처받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치료하는 본인도 힘들지 않나?
힘들기도 하고 힘들지 않기도 하다. 힘든 것이 있다면, 사회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의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 송전탑 위에 올라가, 앉기도 눕기도 힘든 철골 위에서 농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부터 증폭된 두려움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기에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힘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상담했던 피해자들의 상태가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보면 의사로서 보람차다.

나 사회적으로 국가 권력 피해자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사람들은 방사능이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DNA를 바꾸고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파급력도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를 한다. 이처럼 사회 권력으로 상처받은 피해자들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도 필요하다.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서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와락'이 사회 권력의 폭력이 개인에게 주는 정신적 피해가 치유 받아야 하는 것임을 사람들에게 일깨우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최근 국가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예산이 쓰이고 여러 트라우마 센터들이 생기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나 평소 '사람'과 '마음'을 중요시하는 것 같은데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사회는 사람을 자꾸 도구화한다. 도구화 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으로 타인을 보는 것이다. 회사가 노동자를 이익 창출의 도구로 여기는 것도 사람을 도구화 하는 것이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 선생님과 학생 같은 관계도 도구화된 경우가 많다. 사람에게는 그런 관계 자체가 큰 상처다. 사람은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항상 유념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 그런 도구화된 관계에서 받은 상처는 나의 마음에 집중하면서 치유해 나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느끼고 대처하는구나'하면서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다 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나가고 싶은지
치유자를 양성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는 상처받은 사람은 많지만 치유자가 부족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 의사 중 95%가 약물치료만 하고 상담은 하지 않는 행태가 이어져 오고 있다. 마음을 다루고 소통하는 곳이 없다. 펄펄 끓는 상처의 현장을 함께 하는 치유자를 양성하고, 그런 치유자를 계속 양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국가 폭력의 현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녀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자신이 상담했던 사람들이 치유되는 것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보람을 느낀다는 그녀. "진료실이든 현장이든 사람의 마음이 있는 현장에 갈 것이다"는 말에서 상처받은 피해자들을 향한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트라우마 센터=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와 재활, 상담·예술 치료를 하는 곳

 

정혜신 박사의 주요 활동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