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인(국문11)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며칠 전, 친한 선배와 함께 막걸리와 육회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막걸리는 그 노란 빛깔만큼이나 시큼털털했고 적갈색의 육회는 달달하고 짭짤했다. 낙엽은 이제 거의 다 떨어졌으며 바람은 매서워졌다. 올해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날이 추워짐에 따라 먹먹한 허탈감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선배를 불러 막걸리를 놓고 마주앉았지만 딱히 그 감정을 설명할 이렇다 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겉돌다 어렵게 입을 뗐다. 허무하고 허탈해. 뭐든,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손에 남은 것이 없어. 이어 자질구레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사실 이번학기에 쓰고 있는 글을 마무리해서 공모전도 나가고 연주도 잘 하게 되고 그리고 학점도 잘 받고, 그러길 바랐어. 근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서……. 그 선배는 웃으며 그저 자신의 앞에 놓인 막걸리를 마셨다. 조급해 할 건 없어. 넌 아직 어리니까, 연주하고 글 쓰는 게 재미있으면 되는 거야. 좋은 말이다. 선배의 말이 맞는 말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 조급증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막걸리 주전자가 가벼워지고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서 허탈감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짧은 순간 다시 떠오른 허탈함이 찝찝하게 남아 입안을 쓰게 했다.
그러한 허무함은 잘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불안감과 조급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비단 필자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내 경우에는 ‘허탈, 허무함’으로 나타났지만, 현대인이라면 이러한 피곤함을 어떠한 형태로든 지니고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이상스런 열기에 휩싸여 있다. 이 열기는 남보다 더 잘해서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으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그 열기에 도취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나락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마저 우리들은 이러한 히스테릭한 열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 열기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에서건 현대인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어떤 분야에 있어서도, 특출난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현대인은 언제나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이 피로감은 숙명적인 것이 돼 버렸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이상스러운 열기 때문에 즐거워야 할 학교생활은 피곤해졌다. 그러나 모든 행위의 목적은 ‘인정받기 위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 돼야 하며, 기본적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인정받으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워서, 글이 좋아서 글을 쓰는 것이어야 한다. 취직을 위한 학점을 받으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해결되지 못한 공허함은 언제든 입안을 쓰게 만들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