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임 낫 데어> 속 노래

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한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의 입이 아름다운 노랫말을 뱉을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용기가 자라났습니다. 성자와도 같은 남자 덕에 사람들은 난폭한 지배계급들에게 서슴지 않고 욕설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꿈이었습니다. 이것은 영웅도 성인도 아닌 자의 이야기입니다. 행동하는 대신 투덜거릴 만큼의 용기만을 가슴속에 담고 싶어 한 사람들, 대신 싸워줄 꼭두각시 인형을 원했던 우리 대중의 쇼가 번번이 깨어진 이야기입니다.
밥 딜런을 아세요? 포크 음악과 반전운동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영화 <아임 낫 데어>는 미국의 전설적인 뮤지션 밥 딜런의 전기 영화입니다. 그의 문화적 영향, 저항정신과 연애사, 가정사를 다루고 있지요. 하지만 거기에 그는 없습니다. 밥 딜런의 전기영화에 밥 딜런은 어디에도 없고, 그의 다양한 면을 상징하는 여섯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뿐입니다.
감독이 생각한 밥 딜런은 시인, 가수, 무법자, 사기꾼, 스타 배우, 그리고 목사들의 자아를 모두 품은 인물인 것 같습니다. 여섯 주인공은 각각 밥 딜런 내면의 분열된 영혼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이 인물들은 ‘반항’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 모양입니다. 소년범인 우디는 국가법에, 은퇴한 총잡이 빌리는 마을 한가운데에 고속도로를 내려는 세력에게, 포크 가수 잭 롤린스는 상업주의와 야만적인 기성세대에 맞서는 인물입니다. 수직적으로 민중을 내리누르는 권력은 언제나 비판 대상이었지요. 그런데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 ‘주드 퀸’이 적으로 돌린 대상은 조금 색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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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포크 팬들이 그들의 영웅을 기다리는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 선글라스와 가죽 자켓을 걸친 주드 퀸이 등장했습니다. 주드는 열광하는 관객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고는 태연하게 전자 기타를 꺼내듭니다. 당대 포크 팬들의 세계에서, 통기타를 버리고 전자 기타를 드는 것은 포크 음악이 상징하는 저항을 포기하는 행위였습니다. 한 템포 당혹감을 공유한 팬들은 이내 거센 야유를 쏟아 부었지요. 하지만 주드 퀸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포크에서 포크락으로,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꾼 주드가 포크 페스티벌이 끝나고 영국으로 향할 때 밥 딜런 원곡의 <Positively 4th Street>가 깔립니다. 노래는 주드의 심경을 대변하지요. 노래에서 딜런은 겉으로는 진실한 척 하지만 뒤에서는 험담을 하고, 힘들 때에는 웃기만 하는 친구를 보는 역겨움을 토로합니다.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대중들을 등지는 주드의 뒤로 “정말 지겨워. 자네를 보는 거”라는 노랫말이 남습니다.
주드가 맞선 것은 정의를 구하는 대중이었습니다. 주드 퀸은 자신에게 저항 운동을 하는 현자 역할을 맡기는 게으른 대중의 기대를 박살냅니다. 주드는 전자 기타를 들고 나와 “자, 당신 주둥이 가져가. 빌려줘서 고마워”라고 노래해 버려요. 그럴듯한 노래를 들으며 의식 있는 체 하고 행동하지는 않는 사람들의 위선을 폭로한 겁니다. 그리고 하나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해가는 자유로운 영혼을 드러냅니다.
부정한 기성세대의 위선에 저항하고자 주드의, 그리고 딜런의 노래를 들었던 이들은 과연 옆 사람들에게 신뢰할 만한 친구였을까요? 어쩌면 영화 <아임 낫 데어>속 노래 <Positively 4th Street>는 위선을 물리치는 정의로운 공인을 원하는 우리들에게, 먼저 스스로를 돌아볼 것을 권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노래는 “단 한 번만이라도 네가 내 입장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라고 끝을 맺습니다. 영웅으로 끌어올려진 남자는 그에게 응원을 보내며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을 끌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밥 딜런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밥 딜런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밥 딜런 같은 사람이 내게 해답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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