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과 석사3기 지요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집 앞 사거리 치킨 집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철야를 하고 학교에서 나서는 길에, 무언가를 놓고 나와 급히 연구실로 돌아갔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서서 불을 켜자, 목을 매달아 죽은 어떤 남자의 시신이 보였다. 놀란 마음에 부리나케 문을 박차고 나와 복도를 달렸다. 복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숨은 계속 차오르는데 엘리베이터나 계단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쳐서 다리 힘이 풀렸다. 속옷은 이미 땀에 젖었다.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순간, 나는 가위에 눌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복도를 달렸을까? 몸서리치는 내 모습이 굉장히 허무했다. 몸은 더 딱딱하게 굳었다. 그 시체는 누굴까? 돌아가 볼까? 몸이 말을 안 들었다. 굳이 이 복도를 탈출해야만 할까.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복도 벽에 기대었다. 그때, 앞에 뜬금없이 문이 열렸다. 밝은 빛 때문에 눈을 뜨기가 힘든 나는, 정말 이 꿈은 가위라고 다시 한 번 확신했다. 몸을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몸을 틀었지만 헛수고였다. 몸에 힘이 빠지자, 느닷없이 하늘에서 누군가 떨어졌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사람이 떨어졌다. 가까이 다가가니 배경이 어느새 집 앞 사거리 치킨 집으로 바뀌었다. 그는 자기를 치킨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몸을 털며 치킨 집 앞에 섰다. 인도 옆에 나란히 심어진 플라타너스 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그를, 아니 치킨을 신이라 여겼다.

치킨 집을 지나 낮에 꾸었던 꿈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치킨 집의 파란색 간판, 진열 불빛 밑에 놓인 갓 튀겨진 닭 부위가 생각났다. 닭의 목은 없었다. 목! 목을 매달아 죽은 남자의 얼굴이 기억이 안 났다! 가위를 눌려서, 달리기가 힘들었던 상황에 온 몸의 진이 빠지고, 누군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사실만 또렷했다. 치킨? 또 그, 아니 신의 목소리도 명확하게 되새겨졌다. 내가 왜 그를 신이라 여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신이 자신을 치킨이라고 불러 달라 요청했을 때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눈 위에 햇빛이 반사되어 앞이 잘 안보이듯, 신의 인상착의는 흐릿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와 교통카드를 꺼내 개찰구에 찍었다. 잔액이 부족하단 표시에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충전기 앞에 섰다. 3천 원을 기계에 넣어 충전을 기다리다,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냈다. 휴대폰에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틀자, 교통카드 충전이 다 되었다. 처음 들어보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얼른 교통카드를 빼서 개찰구에 찍으려고 하자, 누가 날 밀쳤다. 그는 닫히는 게이트를 성큼성큼 넘었다. 개찰구를 다 통과한 그는 뒤를 돌아 나를 보고 웃었다. 음악의 이퀄라이저가 강해지자 불현 듯 나는 저 미소가 익숙했다. 치킨이었다. 개찰구 옆에 선 공익근무요원은 가녀린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개찰구를 지났다. 개찰구에 카드를 찍어 게이트를 지나자, 치킨은 사라졌다.
뚝섬유원지역에 도착했다. 정확히 오후 5시에 교통카드를 찍었다. 대학원 동기들과 만나기로 한 2번 출구로 향했다.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북적됐다. 조깅을 하는 사람들, 전조등을 켜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학원 동기 K와 L이 보였다. 학교 안, 연구실 안에서만 보던 동기들이 다르게 보였다. 왜 다르게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눈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그냥 느낌이 그랬다. K와 L이 나를 보는 눈빛도 달라보였다.
“박 동기가 오셨군.”
K가 말했다.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 어서 자리 잡고 치킨 먹자.”
L은 목도리를 추스르며 말했다.
우리 셋은 근처 앉을 만한 장소를 찾았다.
“잔디밭에 그냥 앉아야 해? 깔고 앉을 거 안 챙겼는데 어디 신문지 같은 거 없나?”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말하자 L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요즘 한강에서 그렇게 앉는 건 드물지. 요즘은 다 마루로 돼있어.”
“역시 집이 근처라 잘 아네.”
K는 두터운 남색 잠바를 입은 아저씨가 건네준 치킨 집 홍보 광고지를 거절하지 못하며 말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