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밤이 빠른 초겨울에 찾아간 대림미술관은 고요한 광채에 휩싸여 있었다.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은 어두운 방에 쏟아지는 흰 빛으로 마치 겨울밤을 연상시켰다.
스와로브스키는 크리스털 제품을 제작하는 회사다.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브랜드에 초점을 맞춘 스와로브스키라는 전시회를 진행한다는 데에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브랜드를 조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한 미학적 신념 아래 이뤄온 다양한 예술적 활동, 그리고 세계의 예술가들과 이뤄낸 협업의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스와로브스키 전시회가 시작되는 2층은 117년에 걸친 스와로브스키의 역사를 조명한다. 스와로브스키 창업주의 유품, 스와로브스키에서 유행시킨 크리스털 장식 인형의 시작이 된 리플리카 마우스 등의 전시물이 흰 기둥에 담겨 미로처럼 전시돼 있다. 스와로브스키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새하얀 방을 지나면 천장도, 바닥도 까만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은 거대한 크리스털 원석을 다이아몬드 커팅방식을 이용해 아름답게 세공한 작품, 시리우스 1088을 전시한 곳이다. 암굴처럼 움푹 들어간 공간에 자리한 시리우스 1088은 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스털로, 각도에 따라 88가지 빛을 내뿜는다. 시리우스의 아름다운 빛을 감상하고 나면 시대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장식했던 작품들을 보게 된다. 마돈나가 공연에서 입었던 의상, 마릴린 먼로가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걸쳤던 장신구 등이 전시돼 있다.

2층에서 스와로브스키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면, 3층에서는 스와로브스키의 예술성을 감상할 수 있다.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것은 ‘ICE BRANCHES’, 크리스털을 이용해 만든 얼어붙은 나뭇가지 형상이다. 날카롭고 차가운 느낌으로 입구를 지배하는 이 작품은 크리스털의 매력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스와로브스키가 제작한 보석 장식들과 티아라가 있는 방이 나타난다. 그리고 스와로브스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나탈리 콜린의 사무실을 재현한 공간을 지나고 나면 미디어아트 팀 ‘ROLL SPIKE’의 작품이 나타난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이뤄진 이 미디어아트 팀은 △설치미술 △영상 △음악 을 통해 크리스털을 해석했다. 어두운 방에 구조물을 설치하고 물을 채우거나 연기를 흘려보내면 빛이 음악과 공명하며 구조물을 통과해 벽에 아름다운 물결을 그려낸다. 빛이 점멸하는 몽환적인 공간에서 울리는 우아한 음악은 때때로 크리스털이 광채를 뿜어내듯 격렬해졌다.
한 층 더 올라가면, 이번에는 패션 디자이너들과 스와로브스키가 협업한 의상을 만날 수 있다. 샤넬, 필립 림 등 유수의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화려한 드레스가 위치한 방에 달린 샹들리에는 영화 <블랙 스완>에 실제로 이용됐던 것이다.
4층까지 관람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면 건축가 JOH의 설치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크리스털 같은 작은 건축물에 들어가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다. 색색의 반지들이 매달린 탁자를 관람객들이 둘러싸고 탄성을 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전시회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술관 건물을 나와 바닥의 지표를 따라가면 대림미술관의 ‘디 라운지’가 나온다. 여기서 관람객들은 크리스털 작품을 착용하는 스튜디오를 체험할 수 있다.
디 라운지까지 감상하고 나니 어느새 6시, 겨울 해가 지고 있었다.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밝은 시간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하얗고 반짝이는 계절이라는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런 겨울의 반짝임을 모두 반사하는 크리스털들에게 어떻게 반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