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만화교양지 <싱크(SYNC)>

기자명 유수빈 기자 (newbien@skkuw.com)

비가 적적하게 내리고 있었고 발바닥은 축축했다. 인문만화교양지가 만들어진다는 길찾기 출판사로 가는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들어선 그곳엔 당연하게도 수많은 만화책과 프라모델이 있었다.

실은 그 작은 공간에서의 첫인상과 ‘인문’만화‘교양’지 싱크(SYNC)는 기묘한 병치를 이룬다. ‘인문’과 ‘교양’이라는 말에는 분명 거창하고 그럴듯한 의미가 부여돼있다. 그 인문에 만화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정말이지 이상한 조합으로 들린다.

이 기묘한 동거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발간된 <싱크>/ⓒ㈜이미지프레임제공

발단과 전개:만화와 인문의 불온한 만남
고상하신 인문과는 달리 만화는 재미와 오락, 때때로 감동을 추구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 둘이 만난다는 것은 별로 건전하지 않게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싱크의 생각은 다르다. 싱크가 주목했던 것은 만화가 갖는 힘이다. 만화는 직관적이고 설득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싱크의 이기진 편집장은 말한다. “여태까지 다른 활자 매체들이 문화, 철학, 역사 등을 담당해왔습니다. 그 분야는 일반적인 만화가 다루던 곳의 바깥에 있었다고 볼 수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존 만화의 재미라는 가치를 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싱크는 만화가 다루는 영역을 넓히려고 시도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싱크가 생각하는 인문이란 무엇일까. 싱크는 인문이라는 말 속에 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학문의 영역을 넘어서는 ‘인간 사유의 세계’를 그려내는 것을 희망한다. 그중에서도 사유가 현실의 삶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런 싱크의 지향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는 탁영호 작가의 <해빙기>가 있다. 이 작품은 1960년대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오영진 작가는 <빗장열기>도 있다. 여기서는 ‘이웃’ 북한의 낯선 모습과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며 이질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또, 독립만화극장 코너에 실린 <영원히 안녕>은 첫사랑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단순히 어려운 개념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을 풀어낸다. 이들 작품에서 싱크가 말하는 넓은 인문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다.

위기:인문과 만화의 불안한 동거
그러나 이 둘의 연애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초창기 싱크는 인문학자들의 모임 <수유너머>의 연구자와 만화작가가 함께 구상한 기획을 보인 적이 있다. 작가와 연구진이 힘을 모아 노마드라는 개념이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을 다루는 등 학문화된 철학을 다룬 것이다. 그러나 작가와 연구자의 호흡은 처음 마음먹은 것만큼 쉬운 게 아니었다. 인문‘학’자들은 추상화된 사유를 표현하는 데 문자 언어를 주로 이용해왔다. 이들에게 과장과 단순화, 형상화라는 특징을 갖춘 만화적 언어는 낯선 도구였다. 한편, 작가는 연구자가 구체화한 개념을 어떻게 만화 칸에 담을지 고민했다. 현재 이런 기획은 싱크의 실현할 수 있는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대신 역사, 문학 등의 넓은 실천적인 철학이 싱크의 지면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삶의 이야기, 광의적 인문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싱크에 추상적, 학문적 사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연구자와 작가 간 호흡의 바람직한 형태는 싱크가 현재도 고민하는 것이다. 이 편집장은 싱크의 달라진 지향성에 대해 “싱크가 보다 다양한 층위로 이야기를 넓혀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절정? 인문과 만화의 무궁무진한 싱크(SYNC)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 동거는 얼마 전 2주년을 맞이했다. 젊은 싱크는 만화 관련 칼럼이나 인터뷰도 싣는 등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싱크는 만화를 통해 사유 거리를 던지는 것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만화 평론의 장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사실은 그것 말고도 싱크의 목표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절망적일 정도로 위축된 만화 시장에서 오래도록 살아남는 것이다. 인문과 만화의 이 신기한 연애가 결말 없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