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밤의 피크닉』리뷰

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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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24시간이라고 칭하지만 정작 자연이 준 그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날은 많지 않다. 해가 지는 시간에는 잠을 청하거나 저마다의 인위적인 공간에서 낮도 밤도 아닌 ‘도시의 시간’을 만들어가기 마련이다. 진짜 하늘 아래서 하루를 온전히 경험하는 계기가 있다면, 과연 밤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게 될까?

『밤의 피크닉』은 한 고등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24시간동안 밤을 새워 80㎞를 걷는 보행제를 배경으로 한다. 이 보행제는 매년 여름 정기적으로 열리는 행사로, 고등학교 졸업반인 주인공들은 마지막 행사에서 저마다의 우정과 풋사랑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기나긴 여정을 채워간다.

소설의 핵심 인물, 니시와키 도오루와 고다 다카코는 동갑내기 이복남매다. 아버지가 다카코의 어머니와 불륜관계에 있었던 탓이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면서도 남매로서 말 한마디 섞어보지 못한 채 18년을 보냈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3학년이 돼서야 한 반이 됐지만 서로를 의식하며 거리를 유지할 뿐이었다. 도오루에게 다카코는 가정에 드리운 그늘이고, 다카코는 그런 그에게 호의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카코의 마음속 한구석에는 그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가가고 싶기도, 그러기엔 두렵기도 한 모순적인 감정에 다카코는 스스로 한 가지 내기를 건다. 보행제 동안 도오루에게 말을 걸어 어떤 대답이든 듣는다면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툭 터놓고 이야기해 보자고 말이다.

밤의 피크닉, 보행제는 일상에서 빗겨난 축제다. 주인공들은 대학입시의 무게와 반복되는 일과를 뒤로하고 하루 종일 걷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스스로의 안으로 침잠할 수 있는 시간. 도오루와 다카코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돌이켜 봤다. 남매는 상대와 아버지에게 가졌던 복잡한 감정을 마주한다.

이 축제는 이튿날 아침에 끝난다. 남매와 친구들의 얽히고설킨 문제들은 나름의 결과를 찾아간다. 밤이 막 시작하던 때, 도오루는 바다너머 수평선에서 아슬아슬한 경계를 연상했다. 동이 트고 다카코와 속을 터놓게 되자 비로소 도오루는 수평선 멀리 세계가 나타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밤은 아버지의 외도로 인한 오랜 상처를 치유한 계기가 됐다.

다카코의 마지막 보행제에 별은 없었다. 하늘이 맑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카코는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많은 별이 흩뿌려져 있던 지난해의 보행제를 떠올린다. 그녀를 깊이 이해해주던 한 친구는 남매를 이어줄 ‘주문’을 걸어두었더랬다. 별빛 아래 걸었던 주문은 칠흑 같은 밤에 돌아왔다. 이복남매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이들에게 보행제의 밤은 거울처럼 서로의 복잡한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일본에서 개봉한 밤의 피크닉 영화 포스터. ⓒ무비아이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