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당신의 불확실한 그림자전> 스케치

기자명 조수민 기자 (skkusue@skkuw.com)

설치예술은 말 그대로 빈 공간에 무언가를 ‘설치’한것으로 의미를 가지는 예술이다. 아직 설치예술의 세계를 경험해 보지 못한 새내기를 위한 전시회가 있다. 삼청동 금호미술관에서 빛과 그림자,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당신의 불확실한 그림자전>이 열리고 있다.
당신의 그림자를 확신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자신의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당신의 불확실한 그림자전>은 이런 그림자의 불확실성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 홍범 작가의 『hide & seek #5』 설치작품. 김신애 기자 zooly24@

전시가 시작되는 3층의 1전시실로 들어서니 성기완, 이수경 작가의 <함바집>이 첫 인사를 건넨다. ‘함바집’이란 공사장 인부들의 식사를 위해 건설현장에 만들어진 간이식당을 말한다. 제목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깔끔한 공간이다. 그리고 공간 안에는, 함바집의 어수선한 소리가 있다. 어울리지 않는 공간과 소리의 조합. 작가는 이런 설치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정갈한 공간으로부터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함바집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지는 2전시실에서는 공간의 세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자들이 관객을 맞는다. 사람, 동물부터 시작해서 손바닥, 나무까지 다양한 그림자들이 제대로 혹은 거꾸로 서 있다. 이창원 작가의 <Parallel World>다. 벽면의 그림자들은 여러 이미지에서 나온 것이다. 작가는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기사 이미지에서 특정한 부분을 오렸다. 그리고 그 면을 거울에 대고 LED 조명을 비춰 반사된 이미지를 벽면에 드리웠다. 벽면의 그림자들은 뉴스 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과 상황에 위치하며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 갤러리 1층에 전시된 배정완 작가의 『String theory of evolution』. 김신애 기자 zooly24@

한 층 내려가 2층 1전시실로 가본다. 기존의 스크린과는 다른 깃털로 만들어진 커다란 스크린이 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불그스름한 빛이 비춘다. 하원 작가의 <숨>이다. 붉은빛은 작아지고 커지고를 반복하고, 여기에 숨소리, 심장 소리까지 더해지며 관람자를 몰입의 세계로 이끈다. 2전시실에는 신성환 작가의 <明.bright> 전시가 펼쳐진다. 전시실 한가운데는 수조가 놓여있다. 수조 위의 카메라가 담아낸 수조의 모습은 벽면에 영상으로 상영된다. 물이 떨어지는 모습과 사운드를 통해 ‘물방울의 떨어짐’이라는 근본적인 움직임에 주목하게 한다.
전시의 마지막인 1층의 오른쪽에는 커다란 전시실이 있다. 그곳에 펼쳐진 여러 개의 스크린. 그리고 그 안의 그림자. 1층 전시실에는 배정환 작가의 <String theory of evolution>이 펼쳐진다. 스크린 속 그림자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진 다양한 색감의 LED 조명과 빔프로젝터, 비닐 구조물을 통해 작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람들의 일상과 감성을 보여준다. 중앙의 홀로 나가보면 황지은 작가의 <우연구름>보인다. 긴 스크린 속에 여덟 명의 참여 작가들의 그림자들이 다양한 운동을 하며 움직인다. 관람자들은 스크린 뒤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안에는 노트가 비치돼 관람자가 작가에게 글을 남길 수 있도록 했다. 관람자가 안으로 들어가 글을 남기면, 그 그림자도 스크린에 비친다. 스크린 밖에서 보는 관람자에게는 참여 작가들의 그림자들과 글을 쓰는 관람자의 그림자가 혼재돼 보인다. 새로운 운동감을 가진 그림자가 탄생한다. 비로소 작가와 관람자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금호미술관을 뒤로한 채 길을 나섰다. 귀갓길에 보이는 그림자가 예사롭지 않았다. 전시회를 통해 봤던 수많은 그림자가 겹쳐지며 혼돈의 세계로 이끌었다. 삼청동 길바닥에 비추는 그림자는 과연 그림자가 맞는가. 맞다면 저것은 과연 우리의 그림자인가, 타인의 그림자인가. 과연 어두운 것이 그림자고, 밝은 것이 배경인가.
전시회를 보고 나온 후의 대답은 ‘아니다’다. 어두운 것은 우리의 그림자고, 밝은 것은 세상의 그림자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불확실성을 띠기에 그 의미가 있다. 그림자는 ‘확실히’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