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에인 랜드

기자명 유수빈 기자 (newbien@skkuw.com)

▲ ⓒaladin
신화는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야기로만 남아야 한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신화는 비유를 통해  현실에 나타나곤 했다. 그 예로, 근대의 권력 계층은 민중을 무서운 그리스 신화 속 괴물 히드라에 비유하곤 했다. 그 징글징글한 괴물은 위대한 헤라클레스가 아무리 머리를 베도 자꾸만 부활했던 것이다. 1957년, 미국의 여류 작가 에인 랜드(Ayn Rand)는 그리스 신화 몇 개를 가져와 그럴듯한 이야기를 발표했다. 바로 『아틀라스-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이하 아틀라스)이다.
신화 속 아틀라스는 세계를 어깨에 짊어지는 형벌을 받는 거인족이다. 한편 에인 랜드의 아틀라스는 자수성가한 자본가와 지식인 계층을 이르는 표현이다.
아틀라스들은 인간의 이성과 자유, 그리고 이익을 무한히 추구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일반적인 ‘인간적·윤리적 가치’를 허황된 것으로 여긴다. 우리의 주인공들 사상에 따르면, 신화 속 아틀라스가 세계를 짊어지듯 자본가와 지식인들은 민중을 먹여 살린다. 아틀라스들이 없다면 고용과 생산, 혁신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민중은 참으로 어리석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을 먹여 살리는 자본가를 역겨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독점 금지나 고용 보장 등의 규제를 통해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고, 아틀라스들의 사업을 방해하려 한다. ‘깨어있는 자’들은 그런 민중이 어리석다며 손가락질하고 비웃는다.
따라서 『아틀라스』 속 민중에게도 히드라의 비유가 숨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뛰어난 사람들에게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보통 사람들이란 징그러운 괴물인 것이다. 자본가는 겁 없이 덤벼드는 머리들을 잘라야 한다.
▲ "나는 결코 타인을 위해 살지 않을 것이며, 타인에게 나를 위해 살도록 청하지 않을 것이다."-『아틀라스』 본문 중
이를 위해 ‘깨어있는 자’들은 민중에게 아틀라스들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어느 날부터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다. 로키 산맥 근처에 있는 ‘규제 없는’ 자신들만의 낙원, 아틀란티스로 숨어든다. 그들이 사라지자 기본적인 식량 배급이나 전기 조달마저 끊기며 민중의 나라는 마비된다. 끝내 아틀라스들은 민중에게 자신들의 필요성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성공적으로 사회에 복귀한다. 그래서 ?아틀라스?는 바로 히드라의 머리를 불로 지지고 땅에 묻은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포고가 아틀라스들의 자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한계는 에인 랜드의 서술법에 있다. 그녀가 그려내는 인물은 반드시 히드라의 사상과 아틀라스(또는 헤라클레스)의 사상, 그 어느 것도 아니라면 기회주의 중 한 진영에 속한다. 그런 단순한 이분법적 관계에는 화해와 공생이 끼어들 틈이 없다. 또한, 에인 랜드가 옹호하는 아틀라스의 그럴듯함은 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것이 아니라 인물의 카리스마와 우호적인 묘사에 의존한다. 그녀는 아틀라스를 너무 확고하게, 히드라는 너무 단순하게 그려냈다.
신화적 비유에서 에인 랜드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아틀라스의 형벌이다. 책에서는 왜 아틀라스는 형벌을 받게 됐는가, 라는 질문은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틀라스들에겐 오직 그들의 고통인 형벌 자체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인 랜드는 민중이 자본가와 지식인을 혐오하는 이유를 가치관과 지성의 차이로 한정한다. 그녀에게 국가의 규제는 포퓰리즘일 뿐이다.
다시 신화가 이야기로만 남아야 한다는 명제로 돌아가자. 에인 랜드의 『아틀라스』는 명제를 거부한다. 아틀라스들의 핵심 사상은 △규제 철폐와 무한정한 자유 △이성을 향한 믿음 △이익 추구의 정당함이다. 이 셋은 어디선가 많이 듣던 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나아가 세계를 지배했던 표어들이다. 『아틀라스』는 2002년 미국 의회도서관과 북 오브 더 먼스 클럽(Book of the Month Club)의 설문조사 ‘미국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 순위 2위에 오른 만큼, 지난 반세기 간 미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에인 랜드의 책은 본인이 지향하는 체제와 사회에 대한 논증이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여기서 솔직하게 드러나는 ‘정신’은 엿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유로운 어느 오후의 부르주아처럼 『아틀라스』를 집어 들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