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백 사학과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요즈음 사회 도처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대기업 고위 경영진이 인문학 대학원을 다니는가 하면, 삼성전자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본교의 대학원과정에도 인문학 강좌가 배치되고 있다. 삼성그룹이 인문학 전공자 200명을 채용하기로 했다는 단신이 지난주의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혹은 노숙자에서 주부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여러 집단을 망라하는 인문학아카데미나 강좌도 진행되고 있다.
이런 인문학 열풍은 단순히 사회 구성원들의 호사스런 취미활동을 위한 것만은 아닐테다. 대기업들이 최근 인문학 학습을 권장하거나 인문학도의 채용을 선호하는 이유는 경영학, 경제학, 공학, 법학, 자연과학 등을 전공한 사원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편협한 전공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창조력과 탄력적 사고를 지닌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직업윤리로 기업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성공회대에서 실험한 ‘희망의 인문학’ 강좌는 노숙자들에게 새롭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서 그들이 노숙생활을 벗어나 건강한 생활인으로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는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것에 못지않게,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애도(Mitleid)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대학교육의 근간을 이뤄야 한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자과캠에서 개설된 사학과 강좌들이 계속 수강인원 부족으로 폐강되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문과대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이는 요즈음의 사회적 분위기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인문학에 대한 외면의 주요원인으로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 부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각 전공이 요구하는 기본 필수과목의 부담이 학생들로 하여금 인문학 강좌를 신청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우리는 자연과학자나 공학자에게 직업윤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사를 통해 배워왔다. 과학도들에게 인문학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자탄 투하를 막았거나 수은 중독이 야기한 미나미 병의 잔혹한 폐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기술과 끝을 모르는 이윤추구 욕구가 인간의 삶 자체를 통째로 황폐화시킬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인문학 학습을 통해서 과학과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것은 절실히 필요하다.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의미의 그물망’에 갇혀 사는 존재가 아닌가? 이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야 말로 개개인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 아닌가?
나는 학교 행정당국 그리고 자과캠 교수들께 학생들이 제도적으로 인문학 강좌를 듣고, 토론하고, 이를 통해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을 부탁드린다. 

▲ 정현백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