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사회적 소수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어차피 학생은 성균관대 학생이고 그분들의 입장이 되는 건 불가능한 거 아닌가요? 진짜로 그분들의 삶을 사는 게 아닌데 어떻게 그들의 삶을 이해하나요?”
신문사 선서식에서 선배로부터 이 질문을 처음 받았다. 그때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지만 한 학기 동안 고민해 본 결과 지금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 까닭은 없다는 것.
처음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 기획에 관심이 생겨 조사에 들어갔을 때도, 기적적으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우리 학교 동성애자 동아리 ‘성퀴인’이 ‘퀴어홀릭’이란 이름으로 활동 중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한동안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무엇 때문에 같은 성적 취향을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동아리까지 만들 필요가 있는 거지? 성적 취향은 성적 취향이고 동아리는 동아리 아닌가?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여러 대학의 성소수자 동아리 학생들과 만나 인터뷰하면서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게 됐다. 그들에게는 이성애자 위주의 사회에서 받아온 압박감에서 해방될 공간이 필요했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교수의 발언으로부터 자신의 처지를 대변해 줄 단체가 필요했으며, 자신과 같은 위치에서 공감해줄 동료가 필요했을 거다.
그들의 절박함에 비하면 성소수자 모임이 동아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얼마나 형식적인가.  “다른 동아리들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는 회칙에 명시된 사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답변만큼 간단한 책임 회피가 있을까. 적어도 한 사회의 운영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기구가 소수자에 대한 배려 없이 원칙만을 추구하는 모습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단지 특정한 사람, 특정한 기구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들이 억압받는 현실을 묵인하는 우리 역시도 그들의 어깨 위에 얹어진 현실의 무게에 한몫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번 취재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신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