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기진 부편집장 (skkujin@skkuw.com)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등으로 알려진 일본의 추리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특유의 분석적이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유명하다. 그의 문체는 복잡하지만 정교하게 맞물려가는 미스터리적 장치와 함께 그만의 개성을 형성한다. 혹자는 이러한 색채를 그의 특이한 이력에서 찾곤 하는데, 그는 대표적인 이공계 출신 작가로 꼽히기 때문이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의 작품에는 원자력 발전이나 뇌 이식 등 과학적인 요소가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녹아들어 있어 혹자의 추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이공계 특유의 분석적이고 관찰 중심적인 사고는 글쓰기와 결합했을 때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조금 과장해서 나노(10-9)미터 수준의 원자 구조를 규명하고 아토(10-18)초 찰나의 생체분자를 포착하는 섬세함을 글쓰기에도 취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기대되는 일인가.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인 MIT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글쓰기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이런 효과를 고려해서가 아닐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특히 글로벌 대학을 꿈꾸는 우리 대학의 자과캠에서도 글쓰기 문화는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자과캠 과목 특성상 글쓰기 과제가 거의 없고, 있다 해도 조금만 길어지면 논문 및 자료의 짜깁기 현상이 일어나 이에 싫증이 난 교수가 글쓰기 과제를 없애버리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공계에도 글쓰기는 필요하다’라는 명제가 머리로는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지만 손끝으로 전해지기까지는 부단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가 보다.
자과캠 소속인 필자도 태생적으로 활자를 다루는 데 어색하지만 매주 글쓰기를 해오고 있다. 단어 하나를 고를 때도 고심하는 생활을 1년이 넘게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글쓰기는 두려운 일이다. 하물며 문자 대신 숫자가 더 친근한 일부 자과캠 학우에게 글쓰기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필자는 글쓰기라는 번거로운 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것을 추천한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건대 이과 학문에서 글쓰기의 비중은 문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 학문 연구 체계의 기본 단위인 논문 작성 시에도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연구 성과가 우수하다고 한들 인정받기가 어렵다. 또한 과학 및 공학 기술이 발전해 나감에 따라 이에 대한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과학기술자들은 사회에 자신들의 연구나 결과에 대해 알릴 수 있는 한편 대중들은 연구자들에게 이들의 관심과 우려를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의 접점이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글쓰기 능력은 핵심 역량으로 주목받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공감한다면, 오늘 당장 글쓰기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종이도 좋고, 모니터도 좋다. 자신이 없다면 학교의 도움을 구해도 좋다. 지난 18일부터 의사소통교육센터에서는 인사캠에서만 진행하던 글쓰기 클리닉 프로그램을 자과캠에도 개설했다.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성대신문 여론 면이 자과캠 학우의 담소와 자과캠 교수의 돌물목으로 가득 채워질 그 날을 기대하며, 지극히 이공계스러운 필자의 글을 마친다.

▲ 김기진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