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신애 기자 (zooly24@skkuw.com)

그를 둘러싼 수식어는 무수히 많다. △그래픽 디자이너 △모션 그래퍼 △미디어 아티스트 △비주얼 아티스트 △비주얼 자키까지. 넘쳐나는 수식어에 걸맞게, 머무르지 않고 늘 앞으로 나아가는 박유석 작가를 지난달 24일 합정동의 한 고즈넉한 카페에서 만났다. 검은색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은 옅은 회색빛 하늘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 처음 영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어렸을 적 꿈은 디자이너였다. 내가 살 집과 타고 다닐 자동차를 내 손으로 직접 디자인하고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나는 디자이너가 되려면 공대로 진학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 이과 공부만 하다 뒤늦게 미대 준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취미 삼아 습관처럼 그려온 그림을 바탕으로 일러스트 관련학과를 진학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애니메이션학과를 알게 됐고, 비슷한 영상학과로 진학하게 됐다. 물론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내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 수식어가 상당한데, 각각의 직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단순하게 시각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픽 디자이너(Graphic Designer)는 말 그대로 그래픽을 이용해 디자인하는 사람을 말한다. 모션 그래퍼(Motion Grapher)도 마찬가지로 그래픽만을 가지고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미디어 아티스트(Media Artist)는 매체를 가지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상업적 목적이 강한 직업이라면 미디어 아티스트나 비주얼 아티스트(Visual Artist)는 반대로 비상업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조금 다른 개념인 비주얼 자키(Visual Jockey)는 현장성 측면에서 가장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영상보다는 음악이 먼저다. 음악과 더불어 음악이 나오는 공간을 영상으로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되겠다.

■ MONOID란 이름의 뜻이 궁금하다
‘Monoideism’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단일관념, 즉 쉽게 말해 하나의 생각이라 할 수 있다. 평소 간결하고 단순한 것을 선호한다. ‘하나’라는 의미의 ‘Mono’ 자체도 나를 잘 표현한다고 생각해 이러한 이름을 짓게 됐다. 하나의 시선, 나의 한쪽 눈에 대한 의미가 크다. 물론 ‘하나’라는 개수의 측면뿐 아니라 무채색의 느낌과 분위기도 좋아한다.

■ 2010년 발표한 <Half Blind Memories>는 작가 본인의 한쪽 시력을 잃게 한 태양을 직접 재구성한 작품이라 들었다. 잃어버린 오른쪽 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린 시절 집 열쇠를 종종 잃어버리곤 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부모님께서 오실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집 앞에 앉아 태양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 후에 남겨진 잔상이 너무 신기해서 몇 번을 반복해서 행동했다. 맨눈으로 태양 빛의 강한 자극을 지속해서 받다 보니 시신경에 무리가 갔고, 결국 오른쪽 시력을 잃게 됐다. 외관상으로나 안구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안구 뒤편의 시신경이 손상돼 시력 측정이 불가능해졌다. 거의 왼쪽 눈 하나로 사물을 인식하고 작업한다. 치료를 위해 일 년 여간 수차례 병원에 다녔지만 완치할 수 없었다.

■ 한쪽 눈으로 작업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나
일상생활이나 작업에 큰 지장은 없다. 다만 나머지 한쪽 눈의 시력도 좋은 편은 아니라 시력을 온전히 잃어 작업할 수 없게 될까봐 종종 두려움을 느낀다. 아, 작년에 모나코에서 일하던 도중 곤란한 일이 있었다. 입체 광고 영상을 제작해야 했는데 나는 3D의 입체적인 자극이 느껴지지 않아 홀로그램이나 3D 관련 작업을 못한다. 그래서 3D 영화도 못 본다. 머리만 아프다.(웃음)

■ 경험을 중시한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모든 경험은 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우울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얻는다.(웃음) 과거의 작업엔 주로 주관적 경험을 구현하는 내용이 많았다. 특히 태양에 시력을 잃게 된 어린 시절의 경험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그때의 경험이 개인적으로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는 좀 더 객관적이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작품을 구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사람들에게 간접 경험 기회를 주고 싶다.
■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작년 여름에 다녀온 유럽 여행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무엇보다 공간에서 느낀 것이 많았다. 유럽에는 흔히 접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공간들이 많았다. 강가 바로 옆에 자리한 창고 형태의 건물부터 파리에서 보았던 콘크리트로 된 건물, 세느강에 떠 있는 배가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이 됐다. 그곳의 분위기와 에너지는 내게 큰 자극제였다. 형식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즐기며 사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다양한 경험과 영감을 얻기 위해 매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 영감의 주 근원지는 어디인가
근본적인 영감은 역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구체적인 영감의 자극이 됐던 것은 스물한 살에 우연히 접한 일본의 ‘Cornelius’라는 음악가다. 2004년에 발매된 「Point」는 지금까지도 많은 영감을 준다. 나는 실제로 공연을 본 적도 그를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의 음악에서 얻는 감동이 상당히 크다. 그의 음악에는 동양적인 요소들이 많이 첨가돼 있다. 마치 명상하는 듯한 잔잔함 속에서도 위트가 있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 작업의 구상 과정이 궁금하다
일상이 늘 자극이고 영감이다. 어떤 우연한 느낌이나 감정을 겪을 때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특히 음악을 듣거나 순간을 마주하면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마구 그려지고 그것을 구체화하고 싶어진다. 구체화 작업은 주로 새벽에 하는데 2시에서 4시 사이가 가장 작업이 잘된다. 거의 밤낮이 바뀌어 생활하지만, 새벽 공기에 익숙하다.(웃음)
■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이 있다면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직 없다. 나는 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업이 끝나면 항상 부족한 부분이 눈에 들어와 아쉬움이 먼저 든다.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자면 2007년에 ‘Cornelius’의 ‘Omstart’라는 곡으로 작업한 Memories of Cornelius(MOC)가 가장 애착이 간다.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지만, 그때의 순수함이 작품에서 생생하게 느껴진다.

■ 앞으로의 계획은
음악과 영상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청각의 시각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음악은 내면적 공간을 형성해준다. 음악을 돋보이게 하는 영상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십 대의 마지막을 장식할 보람찬 무언가를 하고 싶다. 나만의 이십 대를 특색 있게 표출할 수 있는 작업을 많이 할 예정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한마디
좋아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중요한 것 같다. 대중에 휩쓸리거나 유행이 치우쳐서는 안 된다. 자신만의 취향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닌 좋아하는 ‘것’에 대해 명확해야 한다. 일 외적으로 자신만의 관심사를 찾았으면 한다. 노력을 많이 하길 바란다. 일상적인 경험이 아닌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스스로 찾고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많이 보려고 노력해라. 보고 담아야 한다.

글사진 | 김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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