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치콕> 속 영화 <싸이코>

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알프레드 히치콕’. 서스펜스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영화감독의 이름이죠. 그의 영화에는 유독 불안한 심리상태의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관음증적인 시선도요. 그의 영화에서는 누군가를 비밀스럽게 엿보는 시선이 어느새 카메라의 시선, 관객의 시선으로 치환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싸이코>는 히치콕의 대표작으로서 이런 특징들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 "봤죠? 그는 늘 감시하고 있어요" - <히치콕> ⓒFOX searchright

한편 <히치콕>은, 히치콕이 <싸이코>를 만들 당시의 이야기를 다룬 전기영화입니다. 히치콕이라고 하면 으레 카리스마있게 턱을 치켜든 유명한 흑백사진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관음증, 스릴러 등 그를 둘러싼 음험한 키워드와 함께 말이죠. 하지만 나폴레옹이 언제나 흰 말 위에 앉아 한 손을 셔츠에 넣고 있지는 않았듯이, 히치콕도 다양한 표정을 지닌 인간이었습니다. 관객들은 영화 <히치콕>에서 단 것을 좋아하고 영화가 실패할까 걱정하며, 아내 알마와 친구의 관계에 질투를 느끼는 ‘히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만 본다면 그가 <싸이코>에서 비틀린 인간의 심리를 그토록 강렬하게 그려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 "그는 어머니에게 인생의 반을 준거죠" - <싸이코> ⓒParamount Pictures

<싸이코>에서 여주인공 마리온 크레인은 충동적으로 직장에서 4만 달러를 훔쳤습니다. 이 돈만 있으면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의 빚을 갚고 결혼할 수 있을 거예요. 도둑질 후 도망치는 그녀는 모두 자기를 의심하는 것만 같아 불안합니다. 무사히 한 모텔에 도착한 그녀는 날이 밝으면 돈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하고 편안하게 샤워실로 들어가지요. 이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등장은 여기까지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모텔 주인의 어머니가 그녀를 잔인하게 살해했기 때문이에요. 그녀도 4만 달러도 관객을 놀리듯 화면 저편으로 사라집니다. 중요하지 않은 돈다발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서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맥거핀’ 기법이었던 겁니다. 이제 관객들은 미친 노모를 모시며 괴로움을 감내하는 청년, 노먼 베이츠를 주시해야 합니다. 마리온의 행적을 추적해 베이츠 모텔로 찾아온 연인과 언니, 사립탐정과 함께 말입니다. 노먼은 어머니에게 종속적인 인물입니다. 신경질적인데다 살인까지 저지른 어머니지만 늙고 병든 그녀를 버릴 수 없다고 말하네요. 어머니를 의심한 마리온의 언니와 애인이 어머니를 숨긴 창고로 숨어들자 그는 격렬히 저항합니다. 창고 안에 있는 것은 어머니의 시신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어머니는 그 자신이었거든요. 10년 전 어머니와 어머니의 애인을 살해한 충격에 어머니의 인격을 함께 가지게 됐기 때문입니다.
노먼은 선한 인상 너머 그의 내면에 잠든 온갖 기괴한 것들을 보여줍니다. 모텔 방에 뚫린 구멍으로 마리온을 엿보고, 마리온과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다가 공격적으로 돌변하고, 이내는 어머니의 인격을 꺼내 보이지요. 영화 <히치콕>을 보면서도 이런 이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짐짓 유쾌한 노감독의 일상에서 히치콕의 내면에 자리 잡은 관음증, 불안정한 심리상태, 예술에 대한 집착 등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두 영화가 전하는 이질감은 상당히 다릅니다. <싸이코>의 마지막 장면, 어머니의 인격에 완전히 지배당한 노먼이 어머니로서 독백하며 미소를 지을 때 관객들은 섬뜩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히치콕>에서는 히치콕이라는 개인의 입체적인 인격을 느낄 뿐이죠.
노먼만큼은 아니지만 누구나 심리적인 문제를 겪습니다. 우리는 <히치콕>을 볼 때처럼 우리 내면의 균열을 일상적으로 지나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히치콕 같은 영화감독이 정상과 비정상이 공존하는 심리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비로소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우리 내면에도 존재할 비정상적인 측면을 떠올릴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