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기진 부편집장 (skkujin@skkuw.com)

지난 11일 온라인상에서는 경찰청 공식 블로그에 올라온 ‘경미한 스토킹에 대한 처벌 기준’ 논란으로 시끌시끌했다. 기준을 요약하면 '3회 이상 구애를 하는 경우 경범죄 처벌 가능, 2회라도 상대방에게 불안감을 주는 명백한 사유가 있을 경우 처벌 가능'이다. 해당 기준을 보자마자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앞으로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상대방의 불안감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으로, 2번까지만’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실수로 한 장면의 구애씬이라도 더 들어가면 드라마는 ‘법적’ 불건전물이 될 테니 말이다.
처벌 기준은 지난 3월 22일부터 시행된 ‘경범죄처벌법개정안’에 따라 마련됐다. 지난 3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의 첫 국무회의에서 처리된 안건이다. 해당 개정안이 화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무회의 처리 이후 개정안은 곧바로 ‘과다노출’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그 이름을 알렸다. 개정안 중 ‘여러 사람의 눈에 띄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이는 얼핏 유신 정권 시절의 장발과 스커트 단속을 떠올리게 해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과다노출 규정은 신설된 것이 아닐뿐더러 기존 조항의 처벌을 완화한 것”이고 “과다노출로 처벌되는 범위는 사회 통념상 일반인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수준으로 알몸을 노출하는 것”이라는 경찰청의 해명이 있었던 뒤에야 소동은 일단락됐다.
해당 법안에 대해 계속해서 논란이 불거져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법 조항을 이루는 표현들이 상당히 모호하다는 데 있다. 과다노출 조항에서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는다’거나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은 개인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주관적인 표현이다. 법제교육 전문기관인 ‘법제교육포털’이 2009년 발간한 법제교육교재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에는 ‘법령은 국민 생활의 대부분을 규제하고 국민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그 내용을 명확하게 해 조금이라도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게 만들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반발 여론이 일고 이에 대한 경찰의 공식적인 해명이 있어야지만 대중이 이해할 정도의 법령이라면 최소한의 명확성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에 대한 비판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범죄 처벌 자체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중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말마따나 경범죄처벌법은 1954년 제정돼 이번 개정이 있기 전에도 존재해왔다. 이번 개정으로 경범죄처벌법의 존재가 재조명되자 곧바로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현 상황은 해당 법안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방증한다. 새 정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지향한다면 해당 법안의 존재를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회의는 내각 임명 지연으로 국정 과제가 산적한 상태에서 열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날 처리된 안건은 새 정부의 국정 운영의 우선순위가 반영된 선결 과제였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법질서 확립을 통한 정의 사회 구현을 주창해왔다. 그러나 ‘경범죄처벌법 개정안’ 논란에서 엿본 법질서의 향방은 심히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물론 문제가 되고 있는 개정안은 지난해 3월 18대 국회에 의해 제정되고 입법된 법안이다. 박 대통령은 1년 공포 후 시행하는 일반적인 절차를 따랐을 뿐이다. 그렇지만 국정 기조를 드러내는 새 정부의 첫 작품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해당 법령의 시행 주체는 엄연히 박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비난은 피해 가기 어려워 보인다.

▲ 김기진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