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수빈 기자 (newbien@skkuw.com)

방송 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침묵의 봄』이 막 출간됐을 때도 물론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몇 주 전 방영된 'CBS 리포트'의 레이첼 카슨 인터뷰가 살충제 논란에 제대로 기름을 부었다. 책을 읽지 않았던 많은 사람의 입에서도 카슨과 그녀가 제기한 살충제의 안전성 문제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정부와 살충제 제조사, 그리고 이들의 사주를 받은 과학자들과의 대립각 또한 갈수록 날이 섰다. 관절염과 암도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었다.
이 모든 건 이 글을 읽는 순간으로부터 50년 전의 레이첼 카슨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 『침묵의 봄』이 나오기 전까지 치명적인 살충제 DDT는 무분별하게 살포되고 있었다./ⓒJohn T Pilot

자연과 조화를 이루길
이제 『침묵의 봄』은 고전이 됐다. DDT 등 살충제를 무분별하게 쓰는 것이 위험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더는 이 책의 내용이 새롭진 않다. 그럼에도 책에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 여전히 읽힐 가치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카슨이 걸었던 삶은 자연과 끊임없이 맞닿아있다. 어린 시절 최고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어머니는 재산이나 사회적 시선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그녀에게 가르치곤 했다. 카슨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동·식물을 관찰하길 더 좋아했다. 넓은 들과 숲에서 놀았던 추억은 그녀가 훗날 생물학을 전공하는 계기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언젠가 그녀는 생물학을 “이 세상과 그곳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현재, 과거, 미래에 관한 연구”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그녀가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카슨에게 자연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영원하다. 그곳엔 수많은 생명이 서로 무수히 많은 연결고리를 짓고 산다.

▲ 해충을 퇴치하려 쓰이던 화학물질은 그 일대 생태계를 전멸시켰다./ⓒDave-F

58년,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을 시절에 그녀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엔 그런 ‘압도적인’ 자연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인간이 아무리 간섭하더라도 자연은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그녀의 생각은 『침묵의 봄』을 준비하면서 바뀌어나간다. 그녀는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물질이 성공적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사례를 모아가면서, 결국 “인간이 신의 역할을 대폭 접수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하는 데 이른다. 인간이 자연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했다. 물론 카슨은 자연을 대할 땐 언제나 겸손과 경이로움을 갖고 다가서야 한다는 생각은 그대로 간직했다.

대중을 위한 과학적 글쓰기
물론 지금 이 시점에서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동료로 여기자는 말이 뻔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슨의 진가는 그 생명관을 드러내는 글쓰기에 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선생들은 그녀의 탁월한 작문 실력을 알아보고 전업 작가를 권고할 정도였다. 그녀는 ‘자연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자’는 문구를 피상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과학적인 사례를 조목조목 나열한다.
무엇보다 카슨의 글이 갖는 가장 큰 힘은 읽기 쉽다는 것이다. 그녀가 『침묵의 봄』을 쓰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오늘날 학문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고충으로 이어진다. 어려운 용어를 배제하고 글을 이해하기 쉽게 써나가는 것, 그러면서도 학문적 깊이를 유지하는 것 사이에서 그녀는 균형을 잘 잡았다. 사려 깊고 열정적인 그녀의 문체는 문학적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글을 익숙하고 편하게 읽어냈다. 『레이첼 카슨 평전』을 집필한 린다 리어는 “이제껏 상아탑에만 머물러있던 관념, 즉 생명과 환경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관념을 대중적 격론의 장으로 끌어냈다”고 카슨을 평가한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환경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는 카슨이 『침묵의 봄』을 내기 전처럼 이에 대한 정보와 지속적인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안종주 씨는 자신의 저서 『위험증폭사회』에서 “각종 위험 요소에 대한 안내나 설명이 전문가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환경 문제의 큰 화두인 탈핵에 대해 환경운동연합의 김현지 간사도 “장기적으로 에너지를 전환할 수 있는 구체적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으나 정부나 사람들이 잘 귀 기울이지 않는다”라고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바로 그렇기에 대대적인 환경 운동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레이첼 카슨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