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봄

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봄은 으레 찬란한 생명력, 삶의 환희 등을 상징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봄’은 어두운 시대를 지나는 이들이 남긴 문장에 하나같이 가정법으로 등장하고 있다.
독립투사나 민주운동가의 사계절에도 봄이 없을 리 없건만, ‘겨울이 가면, 봄이 오면…’하고 말했던 것은 이들이 꿈꾸는 봄이란 계절 따라 제 발로 찾아드는 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념이 인도해 줄 ‘봄’은 과연 어떤 세상이었을까? 그리고 1년에 한 번, 침묵의 봄이 어김없이 찾아들 때 그들은 과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광복에서 남북분단으로, 서울의 봄에서 비상계엄 사태로, 전두환 퇴진에서 노태우의 공안정치로 이어졌던 굴곡진 우리나라 역사가 봄을 맞이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많은 열사가 필요했다. 그 중 우리학교를 스쳐갔던 봄에 대한 열망과, 그에 따른 희생을 상징하는 이들이 있다. 심산 김창숙 선생과 김귀정 열사, 그리고 황혜인 열사다. 각각 학교 설립자, 불문과·물리학과 학우로 저마다의 ‘봄’을 이끌었다.

심산 김창숙
심산 김창숙 선생은 평생에 걸쳐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879년 유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05년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려 옥고를 치른 데서 시작해, 임시정부와 독립군에서 활동했다. 광복 이후에는 신탁통치 반대운동과 남한 단독선거 반대투쟁을 주도했고, 이승만 집권기에는 정권의 독재·부패에 대항했다. 선생이 1946년 우리 학교를 정규 단과대학으로 재건하기 전까지, 성균관은 국권피탈 후 △경학원 △명륜학원 △명륜전문학원 등으로 계속 이름이 바뀌며 부침을 거듭했다. 그가 전국에 흩어진 향교재단을 규합해 우리학교를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킨 것은 1953년이 다 되어서였다. ‘심산사상연구회’에서 ‘심산한누리’, 그리고 인사캠과 자과캠에 위치한 심산 동상까지, 심산을 기리고자 하는 뜻은 면면히 이어져 온다.

김귀정 열사

ⓒ김귀정 생활도서관 제공

김귀정 열사는 인사캠 학생회관 4층에 있는 김귀정생활도서관(이하 김귀정 생도)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그는 91년 5월 25일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던 도중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곧 학내 구성원들의 공분을 샀고, 당시 학우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김귀정 열사의 죽음은 매년 5월 열리는 추모제와 그의 이름을 딴 생활도서관의 활동으로 기억된다.

 

 

황혜인 열사

ⓒ황혜인 생활도서관 제공

자과캠 학생회관 지하1층, 황혜인 생활도서관(이하 황혜인 생도)의 주인공인 황혜인 열사도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그의 이상을 위해 산화했다. 우리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해 행소문학회와 동아리연합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그녀는 1996년 4월 16일 정오가 조금 지날 무렵, 분신사망을 택했다. 분신 직후 발견된 그녀의 유서에는 노동해방을 염원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현 정권에 대한, 대중의 의식에 변함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말로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세 열사를 기리는 공간도, 행사도 캠퍼스에서 계속되지만 이들이 누구인지 잘 아는 학우는 많지 않다. 강신덕(신소재12) 황혜인 생도 관장은 “황혜인 생도가 무엇인지, 황혜인 열사가 어떤 분인지 모르는 분이 많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최민석(경제10) 김귀정 생도 운영위원은 “빼앗길 수 없는 가치를 위해 싸웠던 분들의 기억과 함께 현재 누리는 권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bejust16@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