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 1인제작자들을 위한 잡지 'Makezine'. ⓒMakezine
해커라고 하면 대규모 전산망 해킹사건의 범인 같은 대상을 떠올리기가 쉽다. 하지만 50년대 MIT공대에서 생겨난 핵(hack)이라는 은어는 원래 ‘즐거움을 위해 코드를 이용한 창작활동을 하다’ 정도의 의미였다. ‘해커스페이스’의 해커는 바로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창작하는 사람들이다. 해킹은 물건을 분해하고 재합성하는 행위를 말하게 됐다.
해커스페이스는 갖가지 공구와 재료들이 갖춰진 협업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전자회로나 기계 등을 다루는 제작활동을 많이 하지만, △미디어아트 △요리 △재봉까지 협업의 종류에는 제약이 없다. 사업을 위해 제작하는 사람들이든 취미를 위해 제작하는 사람들이든, 누구나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제작공동체의 개념이기 때문에 특별히 위계질서나 관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 회원제로 운영되며 가입에 제한은 없다. 공간 유지비를 위한 회원비를 내면 자유롭게 해커스페이스를 이용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 개인이 확보하기 힘든 장비를 사용하고, 각자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강의 △워크샵 △협업 등의 형태를 통해 공유한다.
1990년 베를린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2013년 현재 세계적으로 700개에서 1000개에 이르는 해커스페이스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며 이는 유럽과 미국 외에도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까지 점점 확장이 되고 있는 추세다. 각 해커스페이스들은 서로 활발한 교류를 통해 창조성을 배양한다.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작업하며 그 작업을 반드시 직업으로 삼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탄생하는 창작물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도쿄 해커스페이스의 발명품 '기모노 랜턴'은 태양열 전지 하나로 최고 10시간까지 빛을 낸다. 지진 피해 이재민들을 위한 발명품이다. 또 3D프린터라는 기상천외한 물건도 각국 해커스페이스의 주 발명품 중 하나다. 3D컴퓨터는 입력된 도안에 따라 물체를 3차원으로 인쇄한다. 1980년에 한 회사가 처음 발명한 후 여러 해커스페이스에서 제작 단가를 낮춰 개량해 왔다.
해커스페이스 운영을 이끄는 가장 핵심적인 철학은 ‘스스로 만들며, 함께 만들고, 무엇이든 만들고, 누구나 함께한다’는 것이다. 오픈소스 운동*이 하드웨어로 확장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한 오픈소스 운동이 사회에 익숙하게 자리잡았고, 더 이상 대량생산체제의 도움 없이도 개개인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한 덕이다. 또 미국에서 1인제작자들을 위한 잡지 'Makezine'이 발간되며 가시화된 ‘메이커 무브먼트(Makermovement)’의 영향도 있다. 메이커 무브먼트는 ‘스스로 제작자가 되자’는 1인제작 운동으로, DIY운동보다 엔지니어링의 측면이 더 강조됐다.
해커스페이스의 역사도 길어지고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1인 제작 운동이 전성기를 맞다 보니 다양한 변주도 일어나고 있다. 일단 크라우드 펀딩** 방식과 결합하면서 이들 해커 스페이스에서 구입하려는 장비나 발명품을 사회적 자본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있다. 정부기관이나 지자체에서 나서서 운영하는 해커스페이스도 생겼다. 경기도에서는 ?셀프제작소?라는 이름으로 창업 지원의 성격이 있는 협업공간이 문을 열었다. 상업적 프랜차이즈도 생겨났다. 미국의 기업 ?테크숍?으로, 각 지역에 공구가 갖춰진 협업공간을 세우고 저렴한 가격에 이용하도록 했다. 운영 자체는 기존 해커스페이스와 비슷하지만 MIT의 주도로 진행되는 '팹랩'도 있다.
 

**오픈소스 운동=소프트웨어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소스코드를 공개해 누구나 자유롭게 소프트웨어의 개발?개량에 참여하도록 함.
**크라우드 펀딩=자신의 프로젝트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를 받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