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수빈 기자 (newbien@skkuw.com)

2001년의 노동절, 이탈리아의 도시 밀라노에서 한 단어가 등장했다. 그것은 불안정하다는 뜻의 ‘프레카리오(precario)’와 산업노동자 계급을 일컫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해 만들어진 프레카리아트(precariat)다. 일본과 한국에도 점차 퍼지고 있는 이 단어는 무슨 뜻일까.

불안정한 노동자들
1970년대부터 소위 ‘신자유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자국의 경직된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조합을 문제 삼았다. 그들은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기업들이 외국으로 떠나면서 경제성장률은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들은 기업이 △고용 △임금 △직무구조 등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노동시장에 ‘유연화’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그런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생겨난 불안정한 상태의 노동자가 바로 ‘프레카리아트’다.
수많은 비정규직, 즉 기간·시간제 노동자나 파견·용역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 계급에 포함된다. 이들은 국가와 기업이 제공하는 복지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프레카리아트는 업무와 일터가 자주 바뀌며, 전문적인 경력을 쌓을 수 없다. 또한 직업 정체성이 없어 기존의 노동공동체와 연대하지 못한다. 이는 직업윤리의 부재로도 이어진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어 늘 불안한 이들은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안정적인 직업을 열망하면서 강도 높은 노동을 하지만, 사실상 이들에게 진급의 기회는 차단돼있다. 계속된 실패로 프레카리아트는 점점 무기력해져 간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이들은 관리자의 명령에 따라 일할 뿐이다. 그리고 사회는 그런 그들을 목표의식과 쓸모가 없는 해로운 인간이라고 진단한다.

무기력한 개인을 넘어서려는 움직임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이진경·신지영 엮고 씀)』에 수록된 <성 프레카리오의 강림>에서 이토 기미오는 프레카리아트 운동에 대해 “스스로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타자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장이나 인식으로 향하는 조정의 힘을 갖게 될 것”이라 말하며, ‘다중 지성’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한편, 프레카리아트의 다중성은 내부적인 긴장을 만들어낸다. 저소득 계층이 이주 노동자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적대하는 것이 그 예다. 또한 가이 스탠딩 교수는 아직 프레카리아트 운동이 불안정성이라는 공통된 인식에서 나아가 핵심적인 정치 의제나 전략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프레카리아트는 무기력하고 파편화된 개인이면서 동시에 ‘프레카리아트’라는 구호로 뭉쳐 사회의 개선을 요구하는 집단으로 그려진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는 급속도로 프레카리아트를 양산해왔다. 무력한 개인의 단순한 모임으로만 남을지, 아니면 실질적인 사회 변혁을 이끌어낼지, 오늘날 프레카리아트 운동의 앞날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