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다영 기자 (gaga0822@naver.com)

지난 2일, 1960~8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재현한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이 개관했다. 구로공단은 1964년 수출산업공단으로 조성됐으며 당시 섬유와 봉제 산업에 주력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단지다. 지금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이 바뀌어 오렌지아울렛, 효성물산 등의 패션타운과 대륭테크노타워 같은 대형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섰다. ‘한강의 역사’로 불리는 엄청난 성장 뒤에는 ‘공순이’,‘공돌이’라고 불렸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체험관은 잊혀가는 여공들의 삶을 회고하면서, 고층 건물들 속에 그들이 남긴 흔적을 되새기고 있다.

▲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중 순이의 방.

1층 기획전시관 입구에 들어서자 과거 여공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담은 당시 신문이 전시돼 있었다. 왼편으로 걸음을 옮기니 한 평 남짓한 ‘순이의 방’이 나왔다. 여공 모형의 인형들과 함께 지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옷들이 걸려있었다. 1972년 10월 유신체제 이후 박정희 정권은 ‘고도성장’과 ‘수출지상주의’를 목표로 독점 자본의 성장을 지원했다. ‘수출의 메카’로 불리던 구로 산업 단지의 조성도 정부 사업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농촌에서 올라온 어린 여공들의 희생이 있었다. 여공의 50% 이상은 경제관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스무 살 미만이었다. 그들을 착취하는 것은 당연시 됐던것이다. 고된 노동 속에서 한 줄기 빛은 야학과 노동선교회 뿐이었다. 방 한 켠에 쌓인 책들이 그들의 절박함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방 옆에는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좁은 공간이 있었는데, 낡은 식기류들을 보지 못했다면 부엌인지 몰랐을 것이다.
통로를 따라 조금 더 걸으니 ‘비밀의 방’이 나왔다. 벽마다 구로공단의 역사가 쓰여있는 이곳에서 소리통을 통해 몰래 대화를 나눴던 당시 여공들의 목소리를 실제로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오늘날처럼 임금 문제로 이직을 고민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기에 앞서 임금 인상만 요구한다’는 논리로 오히려 자본가와 정부의 편에 서서 ‘선성장 후분배’를 주창했다. 실제로는 경제성장 이후 임금은 더 낮아졌고, 평균 노동시간은 더 길어졌다. 1970년 전태일의 투신은 이러한 배경에서 일어난 것이다. 은폐된 사회의 불평등을 고발한 전태일의 죽음을 시작으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 전개됐다. 후에 1985년 구로공단에서 일어난 파업은 노동운동사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당시 구로의 대형회사인 △가리봉전자 △대우어패럴 △선일섬유 △효성물산 등이 서로 연대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결성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오늘날 노동자의 권리를 주창하는 다수의 국회의원이나 사회운동가들이 출현했다.
밖으로 나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여공들이 잠을 잤던 쪽방이 겹겹이 연결된 ‘벌집’이 재현돼 있었다. ‘닭장’으로 비유되는 그곳은 언뜻 보면 감옥 같았다. 이에 대해 곽현모 생활체험관장은 “많은 연령층이 벌집을 체험하고, 역사를 현재 삶 속에 새겼으면 좋겠다”며, “특히 IT밸리 회사원들이 와서 보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산업단지가 첨단화 됐을지는 몰라도, 노동자들의 근본적인 노동의 질은 변함없이 낮기 때문이다. 비좁은 ‘벌집’ 안에서 느낀 과거의 여공들의 삶이 불현듯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잠시나마 체험을 통해 과거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일궜던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희생과, 오늘날 노동의 현실에 대해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