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소셜유니온

기자명 김태훈 기자 (kikos13@skkuw.com)

예술인은 정말 베짱이인가?

‘예술가들은 배고프다’는 말은 이제 너무나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명제다. 하지만 왜 예술가들은 배고파야 하는가. 민정연 예술인소셜유니온 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의하면 이것은 예술활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예술이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난 ‘고귀한 일’ 혹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 정도로 취급받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예술인들의 노력의 산물이 경제적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예술계는 △고용불안과 불명확한 노동관계 △불합리한 음악 작업환경 △장시간 노동과 임금체불의 일상화 등 여러 고질적인 어려움을 겪어왔으며 이런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관행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는 ‘내부착취’ 역시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이런 ‘배고픈’ 문화계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두 단체, ‘예술인소셜유니온’과 ‘자립음악생산조합’을 소개한다.
 

▲ 지난해 10월 예술인소셜유니온 준비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예술인소셜유니온 제공
 예술인소셜유니온이 태동하기까지
예술인소셜유니온(이하 예소유)은 예술인들의 사회적 노동조합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2011년 32살로 사망한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창작안전망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됐다. 같은 해, 여러 분야의 예술인들과 문화정책 담당자들이 예술 작업환경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지원제도를 브리핑하는 자리인 <밥 먹고 예술 합시다>라는 집담회가 열렸다. 이 때 예술인들은 회견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이것이 예소유의 시발점이다. 이후 정비를 거쳐 2012년 10월 17일 ‘예술인소셜유니온 준비위원회’가 발족하게 된다. 준비위원회는 현재까지 예술인 복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산,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는 인식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올해 안에 정식 출범예정이다.

예술인소셜유니온의 활동과 목표
예소유는 예술인들의 생존권 문제 해결과 예술과 노동 사이의 사회적 재인식 등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예술인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예소유의 나도원 공동위원장은 “농업이나 공업의 경우 생산자들에게 몫이 돌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으나 예술은 그렇지 못하기에 예술인들에 대한 복지는 선진국과 비교해 거의 전무하다”고 말한다. 예소유가 말하는 예술인은 예술적 산물의 생산과 매개에 종사하는 사람들, 즉 문화산업 종사자 전반을 포괄한다. 비정규직, 고용관계 불분명 등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예술인복지법을 통해 돕는 것이 현재 예소유의 가장 주된 방점. 올해 1월에는 예소유에서 법안의 주 내용을 만든 예술인복지법개정안이 국회의원 27명을 통해 공동 발의되기도 했다. 예소유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각 사업장에서의 4대보험 보장 △노동조합결성의 권리확보 △표준계약서 의무화 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다. 민 위원장은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예술로부터 삶의 자양분을 얻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예술을 위해 예술인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마련의 노력 또한 함께해야 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음악 저작권 역시 예소유가 추구하는 예술인 생존권 확보의 일부로써 다뤄지고 있다. 예소유는 분배율만을 조정해 저작자의 몫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진 않는다. 현재의 가격은 음원유통기업육성을 위한 덤핑가격이기에 분배율만을 조정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음원 가격을 현실적인 가격으로 조정해 저작자가 정당한 몫을 받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창작자가 참여하는 심의기구 설립. 현재에는 음원저작권료 분배율과 가격에 대해 창작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 신탁단체, 문화부, 거대 음원유통기업 등 소수만이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밥은 먹고 다닐’ 그날을 위해
민 위원장은 한 때 <나는 이슬 먹고 사는 요정이 아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자 ‘고귀한 예술을 하는 예술인들이 돈에 관심을 가지면 예술행위가 훼손된다’ ,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일에 왜 돈을 받는가’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렇듯 사회적으로 예술은 노동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늘도 예술가들의 땀이 묻은 노동의 산물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연극 뒤 커튼을 올리는 두 손도, 어느 하나 ‘이슬을 먹고사는’ 요정의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예술가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요정이 아니듯, 그들의 예술 역시 우리의 생활과 무관한 것이 아닌 명백한 경제적 실체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