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경제10)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주간지에는 보통 그 주의 테마라는 것이 있다. 일간지가 섹션 별로 데스크의 테마를 잡고 들어간다면, 주간지에는 상대적으로 좀 더 긴 시간이 주어져 전체적인 테마를 잡는 것이 용이해서다. 이러한 편집은 독자의 해석을 돕고 전체적인 안정감을 부여한다. 성대신문이 비록 ‘신문’의 형태를 하고는 있으나, 이도 주간지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성대신문 역시 어느 정도 테마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제1542호에서는 ‘공간’이라는 테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째서 공간이었을까? 1542호의 기사가 담은 주제들인 노동, 축제, 주거, 등이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한 형태여서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서 잠을 자며 아르바이트를 하러 어딘가로 간다. 이 모두는 공간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사를 읽다가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이들 공간은 분명 우리가 존재하는 곳인데, 우리는 이들에 대해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대동제를 다룬 기사를 먼저 생각해본다. 대동제라는 것은 학생들이 캠퍼스라는 공간을 자치적으로 사유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작용해왔다. 학우들의 직접 축제를 기획하고 참여했다. 이에 대동제는 ‘대학생활의 꽃’이라는 이름을 얻고 ‘모두 하나가 되는 시간’이라는 이름처럼 학우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올해의 대동제, ‘성대랜드’는 어땠나? 사실 근래 몇 년간 ‘대학축제’란 기업들의 홍보부스 혹은 가수들의 주요 행사처 중 하나로 머물러왔다. 올해 축제에서 이 현상은 더욱 심화했다. 축제 공간은 더 이상 학우들이 주체적으로 구성해나가는 공간이 아니었다. 미끄럼틀과 특정 방송사의 행사장, 그리고 학우들의 자치적 기획이 아닌 본부의 동원으로 점철된, 더 이상 자치란 눈을 뜨고 찾아볼 수 없는, 학우들이 철저히 타자화 된 공간이었다.
금잔디를 다룬 기사는 대학에서 자치 공간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냉엄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더 이상 광장은 학우들의 자치공간이 아니었다. 우리는 더 이상 광장을 가질 수 없었다. ‘관상용’인 잔디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기사에서는 이와 같은 현실을 조명하며 우리 모두의 공간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사캠의 새로운 기숙사 건립에 관한 기사는 또 어떠했는가? ‘BTL(Build-Transfer-Lease: 건설 후 건물주가 건설사로부터 건물을 임대해 건설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나 ‘BTO(Build-Transfer-Operate: 건설 후 건물주에게 건물은 넘어가지만 운영은 건설사가 맡는 방식)’를 선택해 기숙사가 건축된다면 기숙사비가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건설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임에도 본부 측은 기자에게 재원조달 방식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바가 없어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 기숙사가 어떻게 될 지도 알 수 없는 지금의 학교는, 아직도 정말 ‘우리의 공간’이라 불릴 수 있는가?
학교 바깥의 사회에서는 또 어떤가? 이번 호에서 노동에 대해 다룬 일련의 기획들을 살펴보자. 지난달 30일과 지난 1일 노동절에 열린 일련의 집회들에 대한 기사들은 ‘우리가 살아왔고 지금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공간’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부모님의 부양을 받으며 살아왔다(구로공단 노동자). 그리고 지금은 대학생이다(430 청년학생문화제).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삶을 위해 노력해주는 노동자 분들이 있다(대학노동자 특집). 우리 자신 또한 비정규 시간제 노동자로서 일하고는 한다(알바데이). 그리고 장래에도 어떤 식으로든 노동을 할 것이다(123주년 세계노동절 기념 대회). 음악저작권법과 문화생산자들의 노동권 등에 대해 다룬 기사에서 다룬 내용 역시 우리가 문화의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얘기였다. 이 모든 사회적 노동의 공간들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가? 123주년 세계 노동절 기념 대회를 다룬 기사의 말미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날 경찰은 시민들을 향해 최루액을 분사했고 경찰차와 폴리스라인에 가로막힌 노동자들의 권리 선언은 불과 이십 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스러졌다.” 묻노니, 우리들이 발 붙이고 있는 이 땅은 과연, 우리의 공간인가?

▲ 최민석(경제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