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영화협회 정광현 회장 인터뷰

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영화 상영 도중에 갑자기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며 영화 속 인물들이 정신없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런 군무 장면이 극중 간간이 등장하더니, 2시간 30분가량을 넘겨서야 따뜻하고 낙천적으로 영화의 결말이 맺어진다. 전형적인 인도 영화다.
극장에서 미국 영화 혹은 한국 영화, 가끔 일본이나 중국 영화를 보는 것이 고작인 대부분의 국내 관객들은 이런 인도 영화를 보면 생소함을 느끼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광현 한국인도영화협회장은 그 새로움에 매력을 느끼고 인도 영화를 소개해 왔다. 10년 전 그가 설립했던 인도 영화 동호회 ‘인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인영사모)’은 ‘한국인도영화협회’가 됐고, 소규모 인도 영화 상영회도 ?언제나, 인도 영화제?라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자연히 ‘인도 영화’에 대한 국내 인식도 확장됐다. 이 변화의 주축이 된 그에게서 인도 영화의 매력과 그간 인도 영화를 소개했던 활동을 들어봤다.

 

이유진 기자(이하 이) 어떻게 인도 영화에 관심을 갖고, 보급에 앞장서게 됐나요?
정광현 회장(이하 정) 한 15년 전 인도 배낭여행 중에 우연히 인도 극장에 가게 됐는데요, 대사를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영화에 푹 빠져서 몇 시간을 보냈던 즐거운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어느 지역을 가든 극장을 먼저 가 보기도 했고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일상의 삶을 사는데 자꾸만 인도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처음에 한국에서 인도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작은 화면에다 제대로 된 자막 없이 보자니 답답하기도 하고, 인도 극장에서 봤던 흥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큰 화면에서 같이 소리도 지르며 보자’고 동호회를 시작했던 것이 2000년 말이었습니다. 그게 일이 점점 커져서 2011년에는 아예 ‘한국인도영화협회’라는 단체로 정식 발족해서 인도 영화를 한국에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지난 2011년 국내 개봉했던 ‘세 얼간이’. 극중 “알 이즈 웰”이라는 대사로 유명세를 탔다.ⓒ필라멘트픽쳐스

이 인도 영화 협회장으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정 무엇보다 인도 영화가 우리나라 영화계 한편에 자리 잡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인도 영화는 세계적인 규모에 비해서 한국에서는 저평가 받고 있고, 인식도 낮습니다. 또한, 불법 복제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고 있기도 합니다. 인도 영화 저변 확대를 위한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불법 복제 파일이 나돌고 있는 형편입니다. 영화가 정식 수입되기 전에 불법 복제돼 무분별하게 유포됨으로써 아무리 좋은 영화도 수입사들이 흥미를 잃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야 워낙 관객층도 두텁고 수입사의 규모가 크니까 이런 부분에 상당히 강력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인도 영화의 경우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 군무 배경을 마추픽추같은 해외 유명 관광지나 유적으로 하기도 한다.ⓒEros International, Monopole-Pathe

이 인도 영화 상영회, 인도영화제 등 많은 프로그램을 현실화하셨는데, 이런 다양한 활동을 어떻게 계획했는지, 또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운영자금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많았습니다. 인도 영화 보급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10년 정도 노력한 결과 많은 회원들의 자발적인 회비와 더불어 각종 행사 지원으로 인해 어느 정도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선상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영화사에 연락을 취해 상영허가를 따내는 일을 해야 했는데 이것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그쪽에서 저희처럼 작은 단체가 그런 영화제를 여는 것 자체를 신기해하기는 하지만, 일단 저희가 영화 수입사가 아니다보니 큰 흥미를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 인도의 유명 영화사에 ‘우리가 이런 영화제를 하려고 하는데, 상영 허가를 달라’고 부탁할 때가 생각납니다. 정말 가슴 떨리고 아슬아슬했는데, 답은 대략 “너희 사이트를 봤는데, 우리 회사의 포스터와 동영상을 불법 게재하고 있다. 빨리 지워라”였습니다. 그 후 회사의 요구에 빨리 대처하고 저희 단체의 성격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을 한 결과 결국은 상영허가를 얻어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수입사나 인도의 영화사들과 어느 정도 라인을 마련한 상황입니다.

▲ 최근에는 군무 장면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 ‘내 이름은 칸’처럼 군무가 없거나 뮤직비디오처럼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필라멘트픽쳐스

이 인영사모나 한국인도영화협회를 꾸려가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세 가지가 떠오릅니다. 2003년 저희 단체가 <서울 국제 여성 영화제>에서 ‘볼리우드 특별전’을 했는데, 제가 그때 인도 옷을 입고 영화제를 누비며 초청 받은 인도 배우들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뻔뻔했을까싶을 정도죠. 또  2005년에는 ‘인도 영화 속의 춤’ 강좌를 통해서 배운 회원들을 중심으로 공연단을 꾸려서 공연도 하고 관객들과 같이 인도 춤을 췄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네요. 2010년에는 외교통상부와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나마스떼, 볼리우드'라는 영화제가 열렸는데, 작품 선정부터 관객 몰이까지 모두 저희 단체가 주축이 됐습니다. 당시 최고의 작품들을 최고의 화질로 상영했던 정말 뜻 깊은 행사였습니다.

▲ "1995년에 개봉한 이래 아직까지 상영되는, 기네스북에도 오른 영화 ‘딜왈레 딜하니아 레 자엔게(용감한 자가 신부를 데려가리)’도 좋아합니다." ⓒYashRaj Films

이 인도영화는 작품 중간에 등장하는 군무와 긴 러닝타임, 풍부한 감성 등이 특징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또 흔히 접하는 한국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되는 특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말씀하신 대로, 인도적인 감성이 많이 묻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 영화에는 한국적 결혼식이 나오지 않지만, 인도 영화에는 전통 결혼식 장면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자국의 전통을 지키는 인도인들의 특성일 수도 있고, 고국의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인도 영화의 특성이라면 두터운 △감독층 △배우층 △스탭층을 꼽을 수 있겠군요.  영화공부를 위해 유학까지 다녀온 우수한 감독들이 많고, 수많은 해외파 배우들 등 다양한 배우들도 인도 영화계의 자산입니다. 그리고 영화 스탭층도 몇 대에 걸쳐 직업을 대물림하며 전문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가장 좋아하는 인도 영화로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데브다스(2002)’를 꼽고 싶습니다." ⓒEros International, Monopole-Pathe

이 인도는 지역마다 영화의 특색이 다르다고 하는데?
다양한 인종, 다양한 언어(사투리 수준이 아니고 외국어 수준의 언어차이)가 공존하는 인도이기 때문에 당연히 영화도 여러 문화권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북인도 중심의 ‘힌디’ 영화권은 흔히 우리가 ‘좁은 의미의 볼리우드’라고 부르는 지역이고, 남으로 가면 남부의 대도시인 ‘첸나이’ 중심의 타밀 영화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동부와 서부, 내륙 등등에 3-4개의 영화권이 존재합니다. 각각의 영화권에서 선호하는 배우 생김새도 다르고, 영화 스타일도 조금씩 다릅니다.

▲ 인도 영화 ‘데브다스’의 군무 장면.ⓒEros International, Monopole-Pathe

이 처음 인도영화 보급을 시작하신 이후, 지금은 인도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하고, 꽤 많은 관객을 모으기도 하는데 감회가 어떠신가요?
“아직은 배가 고프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흥행 성적이 꽤 괜찮은 영화도 있었지만, 인도의 대작이 한국에서 제대로 대박을 터트리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 실현을 위해서 영화 수입사와 협조해서 극장 인증샷이나 SNS등을 활용한 여러 가지 이벤트도 같이 하고 있고요.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인도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영화들이 지금보다 많이 상영되고 대중과 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헐리웃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수십 년간 수익만 바라보는 대기업 위주의 영화 배급 시스템에 길들여온 결과라고 보고요. 과거에 ‘신상’이라는 인도 영화가 70년대 한국 극장가를 휩쓸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 앞에 선보일 수 있을 만큼 편향성이 적었던 시대라고나 할까요.
문화에는 서열이 없습니다. 단지 향기와 맛이 다를 뿐이죠. 그런 다양한 향기와 맛이 우리 문화를 더 향기롭고 맛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중국집 일색이었던 우리 외식 시장에 인도 음식이 자리 잡았듯이 말이지요.
 

▲ 지난 1978년 개봉한 ‘신상’의 포스터. ⓒEros Entertai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