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훈 기자 (kikos13@skkuw.com)

2010년 봄, 마포구 현석동 주택가에 이상한 가게 하나가 생겼다. 월요일엔 영화관, 금요일엔 도예 소품전이 열리더니, 다음 주에는 어느새 수채화를 가르치는 교습소가 돼 있다.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 모를 이곳을 두고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부잣집 아들내미가 놀려고 차린 곳이라는 소문까지 돌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손님이 주인이 되는 가게’, 이너프살롱이다.

▲ 이너프살롱의 내부. 레코드판으로 만든 시계와 소품이 장식돼 있다.

광흥창역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가게는 아담했다. 여섯 명만으로 꽉 차버린 가게 내부는 수많은 LP판과 각종 오브제로 가득 차있었다. 이너프살롱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가진 것으로도 충분합니다”라는 뜻. 자신만의 가게를 꾸리고 싶지만, 현실적인 어려움 탓에 실행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 가진 것’만으로 시작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다. 공간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은 매출의 30%를 사용수수료로 내면 하면 된다. 다만 단순히 공간만 빌려 폐쇄적인 모임을 하는 것이 아닌 외부인에게도 열린 공간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규칙이다.
이너프살롱에서는 판매할 아이템이나 운영 방식, 가구 배치, 가게 이름까지 모두 손님이 정한다. 하지만 방문한 날에는 계획된 판매가 없어, 카페로 운영되며 차와 LP, 그리고 간단한 소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너프살롱에서 판매해온 물건들은 다양하다. △공예 △도서 △사진 △음료 등 여러 분야의 전문 아티스트와 아마추어, 일반인까지 공간을 대여해 자신만의 공간을 꾸렸다. 이곳을 빌려 자신만의 가게를 운영했던, 국내 최초의 퍼퓨머리 ‘퍼퓸라이퍼’의 설립자인 이성민 조향사는 살롱만의 고유한 분위기에 영감을 얻어 ‘에어 드 살롱’이라는 향수를 출시하기도 했다. 판매물품이나 방식이 한정되지 않아 물품 외에도 다양한 판매가 이뤄진다. 미술 전공생이 일주일에 한 번씩 ‘수채화 카페’를 열어 커피 대신 ‘수채화 그리는 법’을 팔기도 하고, 또 ‘네일아트’가 취미인 한 직장인 여성은 동생들과 함께 주말에 공간을 빌려 ‘일일 네일 아티스트’로 활약하며 만족을 얻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각자 가져온 라면을 끓여 먹으며 함께 영화를 보는 제15회 ‘라면 영화제’가 열리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판매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너프살롱의 주인 김정은 씨는 모든 판매가 특별하다고 말한다. 매 판매마다 물품, 배치, 손님 응대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언제나 오는 곳임에도 가끔 이질감이 느껴질 때 뿌듯함이 느껴진다고. 다음 주에는 1인 출판사 ‘그물코’의 판매회가 예정돼 있다.
▲ 지난 4월 열렸던 백승주 아티스트의 도예 소품전 '소풍' 중 일부.ⓒ이너프살롱 블로그

이번 달부터는 이너프살롱에 더해 움직이는 이너프살롱, ‘이너프마켓’이 열릴 것이라고 한다. 작년에 마포구 문화아트센터에서 개최한 지역주민 벼룩시장인 ‘들락날락 마포 커뮤니티 마켓’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기획된 이너프마켓은 접근성을 높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이 목적이다. 매월 짝수 번째 일요일, 이번에는 여의도 레스토랑 닥터로빈 앞 공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교통의 편의를 위해 이너프살롱에서 일요일 오전 10시, 여의도 이너프마켓까지 빈티지 미니버스 셔틀도 운행된다.
우리 모두는 서로 나눌 수 있는, 나누고 싶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이너프살롱에서 모두를 위한 ‘자신만의’ 공간을 꾸려볼 때다. 사실 당신은 이미 새롭게 시작할 만큼 충분히 가지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