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수민 기자 (skkusue@skkuw.com)

진실 혹은 거짓?
우리는 수많은 진실과 거짓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 혹은 거짓인지를 판별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과연 진실을 올바르게 판별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지금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정말로 진실이 맞는가. 김홍석 작가는 '좋은 노동 나쁜 미술'전에서 평범한 작품 전시를 거부하고, 작품과 도슨트의 설명이 어우러진 색다른 설치미술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를 들여다보기 위해 4월의 늦봄, 종로의 플라토 미술관을 찾았다.

▲ '좋은 노동 나쁜 노동' 전시회 전경의 모습이다.

도슨트를 따라나서자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벽에 기댄 사람의 형상이 첫 인사를 건넨다. '미스터 김'이다. 어떤 작품일까 호기심에 가득 찬 관객들에게 도슨트는 이것이 작가와 미스터 김이라는 무용수의 협업으로 이뤄진 작품이라 설명하며,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작품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작품을 기획한 작가의 작품일까 아니면 퍼포먼스의 수행자인 미스터 김의 작품일까. 관객들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도슨트는 고백한다. “사실 거짓말이에요.” 그렇다. 사실은 미스터 김이라는 무용수도 존재하지 않고, 도슨트의 설명은 그저 작품에 대한 포장이었다. 이런 ‘거짓’은 잠시나마 이불 속 숨겨진 미스터 김의 정체를 궁금해했던 관객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다.   
뒤편으로 이동하자 '좋은 비평 나쁜 비평 이상한 비평'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무대에는 자그마한 형상 하나와 그림 한 점, 그리고 평론가들의 영상이 담긴 모니터가 있다. 구멍을 뚫어 두 눈을 나타낸 상자를 머리 삼아 몸통은 비닐봉지로 감싸진, 그리고 등에는 판자 하나를 짊어지고 분홍 삼선 슬리퍼를 신은 모형. 이 형상은 작가가 본인의 모습을 작고, 짐을 진 존재로 표현한 '자상화'다. 뒤쪽으로는 추상화로 보이는 그림인 '걸레질'이 보인다. 작가가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한 후 물감을 부어주면 걸레질을 하도록 해 완성한 그야말로 ‘걸레질’이다. 그러면 이것은 임금을 지급한 작가의 작품인가 일용직 노동자들의 작품인가. 왼편에 있는 모니터에서는 '자상화'와 '걸레질'에 대해 3명의 평론가가 비평한 내용이 흘러나온다. 세 평론가는 ‘좋고’, ‘나쁘고’, ‘이상한’ 비평을 내놓는데, 이 비평 또한 작가가 설치한 무대 안에서 또 하나의 작품이 된다.
▲ 김홍석 작가의 작품 '자상화'.

왼편으로 이동하자 악수하려는 듯한 제스쳐의 손이 벽을 뚫고 나와 있다. 손의 주인을 확인하고자 벽을 넘자 보이는 그는 약간 의외의 모습. 당장에라도 악수를 건네기 위해 벽을 뚫으면서까지 손을 내밀었던 그 모양새와는 달리 얼굴에 종이봉투를 쓴, 폐쇄적이고 수줍은 그의 모습에서 관객은 또 한 번 당황하고 만다. 뒤편의 넓은 공간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장식한 4점의 그림은 기하학적이고 복잡하다. 무언가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 같지만 이 그림 또한 거창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걸레질과 빗자루질로 ‘그냥’ 그려진 그림일 뿐이다.
'좋은 노동 나쁜 미술'전의 작품들을 작품 그 자체로만 본다면 무언가 아쉽다. 작품에 도슨트의 설명이 더해져야 비로소 작가가 의도한 바가 완성된다. 도슨트의 설명까지도 작가의 ‘작품’이다. 계속된 반전과 황당함 속에서 관객은 고민하고 느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 현대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더는 누군가의 설명에 무조건 의존하기보다 한번 쯤 ‘의심’해 보자. '좋은 노동 나쁜 미술'전을 그 시작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당신의 느낌조차도 또 하나의 작품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