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현병호 대안교육 전문 잡지 '민들레' 대표

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당신에게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받은 대부분의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학교’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여기, '교육=학교 교육'이라는 등식을 깨고자 이십여 년의 세월을 바친 사람이 있다. 대안교육 전문 잡지 '민들레' 현병호 대표다. 그는 대한민국에 탈학교 대안교육 문제를 처음으로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교육운동가다. 1998년 ‘민들레 출판’을 설립하고 『학교를 넘어서』를 출간하며 한국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이후로도 대안교육과 관련한 도서를 출판해오고 있다. 또 비영리 교육단체 ‘공간 민들레’와 대안교육 전문 잡지 '민들레' 등을 이끌면서 한국 교육 개혁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1일 아침, ‘공간 민들레’에서 만난 그에게 진정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사진 /김신애 기자 zooly24@skkuw.com

 

교육운동의 길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뭔가.
20대를 방황하며 보내면서, 내가 왜 이렇게 헤매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자라온 인생을 돌아보며 깨달은 결론은 학교 교육이었다. ‘앞으로나란히’를 해 본 적이 있나? ‘앞으로나란히’에는 규칙이 있다. 앞사람의 뒷모습에 내가 포개지도록 서서, 간격은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로 서야 하는 등의 규칙이다. 이 규칙에 따라 수백 명이 운동장에 선다. 그렇게 기준에 따라 자기가 서야 할 자리가 정해지는 전체주의 사회가 학교다. 학생들은 줄이 삐뚤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게걸음 치며 줄을 맞추려고 스스로 노력한다. 문제는 이게 나다운 길이 아니라는 거다. 기준에 맞춰 줄을 서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나 역시 그랬다. 그렇게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선명해졌고, 교육운동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교육운동의 길이라는 게 명확하지는 않았을 텐데.  
대학을 중퇴하고, 길잡이가 돼 줄 만한 선생을 찾아다녔다. 무작정 찾아가기도 하고 편지도 많이 썼다. 그런 식으로 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절박한 마음을 갖고 찾아가니 내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찾아간 선생을 통해 내가 다음에 만나야 할 사람,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공동육아운동단체 간사 △번역 △출판 일 등 교육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민들레출판을 시작한 계기는 뭔가.
당시 일하던 출판사에서 원고를 하나 받게 됐다. ‘학교를 해체하라’라는 A4 200매 분량의 원고였다. 한 서울대 법대생이 수능시험을 치룬 다음 날부터 써내려간 원고라고 했다. 읽어보니 학교 교육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교사라면 낯이 뜨거워 못 볼 정도로 날카로웠다. 일 년간 손을 본 뒤에 몇몇 교육출판사들로 원고를 보냈는데 모두 퇴짜를 맞았다. 교사를 주 독자층으로 하는 교육출판사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을 거다. 답답한 마음에 직접 출판사를 만들게 됐다.

국내 탈학교 대안교육 운동을 처음 일으켰는데, 탈학교 운동이 지향하는 바가 뭔가?
탈학교 운동은 학교를 중퇴하자는 것이 아니다. 탈학교 운동의 기본 정신은 교육을 학교가 독점하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거부다. 병원이 건강을 보장하지 않는데도 건강을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학교가 교육을 다 책임질 수 없는데 교육을 독점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다. 교육을 삶 속으로 되돌리자는 게 탈학교 운동의 기본 정신이다. 세상이 곧 학교라는 생각이 ‘자격증 있는 교사나 국가 시스템만이 교육 할 수 있다’는 신화를 깰 수 있다.

제도권 교육이 담지 못한 ‘교육’이 뭐라고 생각하나.
학생들이 잘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잘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자신을 아는 것, 둘째는 세상을 아는 것, 그리고 셋째는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직업이라는 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이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노래로 소통하는 사람도 있고, 글로 소통하는 사람도 있고, 뭔가를 만드는 일로 소통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나를 알고, 세상을 알고 세상과 함께 소통할 능력을 갖추면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교육 시스템에는 애초에 자신을 알고 세상을 아는 과정이 생략돼 있다. 10대, 20대에는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탐색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무조건 좋은 직업을 가지라고만 하니 아이들은 헤맬 수밖에 없다.

▲ '민들레' 현병호 대표가 '공간 민들레'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 /김신애 기자 zooly24@skkuw.com

국내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지금 일반 학교에 가보면 한 반에 40명 중 30명은 그냥 엎드려 있거나 딴짓을 하고 있다. 학교가 사실상 안 돌아가는 거다. 최근에 *‘혁신학교’와 같은 변화를 만들어보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나는 회의적이다. 교육개혁의 결과가 늘 신통치 않은 이유는 현 교육 시스템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교육 문제는 방대한 ‘교육산업’이라는 경제 구조 뿐 아니라 권력과도 관련이 깊다. 이를테면 혁신학교가 성공하려면 ‘혁신적인’ 교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시스템에서 교장은 교육보다 승진 점수에 신경 써온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직책이다. 기득권층이 볼 땐 이들이야말로 말 잘 듣는, ‘준비된’ 교장인 거다. 이런 구조에서 혁신적인 교육 개혁은 일어나기 힘들다. 기껏해야 틈새를 비집고 몇몇 개혁모델들이 그야말로 어쩌다 생겨나는 정도에 머물 거다.
하지만 그게 교육개혁의 숙명이기도 하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다. 틈새를 비집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 틈새를 넓혀가는 것. 그게 대안교육의 역할이라고 본다.

‘민들레’가 지향하는 바는 뭔가.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의 길을 여는’ 것. 민들레의 슬로건이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이 서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만든 문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 순서가 꼭 이렇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로 살리다 보면 스스로 설 수 있게 된다. 오히려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자신에게 해가 되기도 한다. 숲의 나무들도 서로 뿌리가 얽힌 덕분에 쓰러지지 않듯, 서로 지탱하면서 같이 살아가는 원리가 인간세상에서도 가능하다. ‘민들레’가 지탱이 되는 것도 우리 단체가 잘해서가 아니라 독자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 중에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찾다 보면 세상이 답을 주게 돼 있다. 젊은 친구들이 길을 찾을 때도 이걸 생각하면 실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도권 교육에 맞춰 20년을 살아왔다. 삶의 방식을 바꾸기엔 너무 늦은 시기이지 않을까.
내가 처음으로 교육 관련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20대 후반이었다. 친구들은 다들 직장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헤매는 중이었다. 나도 ‘늦었다’는 절박감이 들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다 부질없는 절망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제일 빠른 시기였다. 출판일은 처음 시작한 때가 34살 때였다. 그러니까 20대는 전혀 안 늦은 거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늦은 나이는 없다는 걸, 나이를 먹어보면 알게 된다.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1, 2년 앞선 걸 부러워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당장은 대학에서 학점을 따고 스펙관리를 해야 하는 게 오늘날 대학생들의 현실인데.
대학생은 굉장히 편리한 신분이다. 마음껏 공부하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에 매우 유리하다. 일생동안 그런 조건이 주어지는 때가 그 때 말고는 별로 없으니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그 시간을 토익공부 하는 데만 쓰면 정말 아깝다는 거다. 세상을 알고 자신의 길을 찾을 좋은 기회인데 도서관에서 취업준비만 하는 건 대학이 주는 가능성의 십 퍼센트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거다. 

▲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공간 민들레'의 입구. /김신애 기자 zooly24@skkuw.com

인생교육을 원하는 대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구체적으로는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부모가 젊었을 때 어떤 꿈을 가졌고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게 됐는지,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미래에 대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등을 묻자. 부모의 인생에도 꿈이 있고, 삶이 있다. 그에 대한 이해, 그 안에 나에 대한 이해가 있다. 내가 만나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결국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관계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런 작은 관계들이 크게 보면 공동체와 민족으로 확대 될 수 있다. 그렇게 확대하다 보면 세상을 알게 된다.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 그게 바로 나에 대한 이해고, 이걸 알아가는 게 인생 교육인 거다.

◇혁신학교=△25명 이하의 소규모 학급 인원 △학교 운영과 교육 과정에 있어서의 자율성 △행정 인력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 지원을 특징으로 하는 우리나라 학교의 형태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