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히드라』 리뷰

기자명 나다영 기자 (gaga0822@naver.com)

▲ ⓒ알라딘
히드라와 헤라클레스의 역사
‘히드라’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스타크래프트에서 침을 뱉는 히드라리스크? 아니면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죽인 머리가 9개 달린 괴물?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괴상하고 끔찍한 그 괴물 덩어리가 맞다. 그리스 신화에서 히드라는 머리가 잘려도 죽지 않고, 되려 그 자리에 새로 두 머리가 생겨나는 괴물이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히드라를 불로 지져 머리의 재생을 막는다.
17세기 초 식민지 개척 세대에서 19세기 산업화에 이르면서, 제국의 지배범위는 전 지구적으로 확장됐다. 이에 저항하는 무질서한 다수의 민중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해서는 힘과 질서의 신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배층은 자신들을 영웅 ‘헤라클레스’, 민중은 제거되어야 할 ‘히드라’로 설정했다. 역사는 지배층에 저항하는 히드라의 머리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서술됐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는 너무나 당연하게 헤라클레스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역사의 바깥에는 징그럽고 끔찍한 히드라가 있다. 

다중적이고 전 지구적인 그들
지배층이 징그러운 괴물로 여기고 제압하려 했던 민중은 특정 계급이나 인종으로 한정될 것 같다. 노동자 계급이나 노예였던 흑인종이 그 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매우 다중적이다. 익명과 무명의 계급이었으며, △다민족 △다문화적 △다인종적 특징을 띤다. 소유한 땅이 없었기 때문에 지역에 얽매이지 않고 전 세계를 이동한다. 쫓겨난 농민, 추방된 중범죄자, 하인, 종교적 급진주의자, 해적, 도시 노동자, 병사, 선원, 그리고 아프리카의 노예 등으로 이뤄진 그들은 민주주의와 평등,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다. 특이하게도 그들은 지배층의 관점에 따라 이중적으로 그려졌다.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는 그들이 순응적일 때는 ‘생산적’인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의식을 갖고 반란과 혁명을 일으키는 민중은 제거해야 할 ‘히드라’가 됐다.

▲ 히드라는 권력과 맞서 싸운 반란과 저항의 역사이자 상징이다./ⓒwikimedia commons

히드라는 정말 제거돼야 할 존재일까
책의 각 장은 생생한 민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배층에게 순응하면서 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 남자와 여자들부터, 아메리카 혁명을 일으킨 잡색 부대, 히드라제국을 위해 떠나는 선장과 대령, 공화국 선포를 주장하다 처형당하는 에드워드 대령 등 실제 역사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300여 년 전 그들의 삶을 담은 그림과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말하는 시와 노래들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마치 살아있는 역사서를 보는 듯하다. 지배자의 관점이 아닌 그들의 삶으로 역사는 창조된다.
1600년부터 시작된 무궁한 역사 속에는 항상 다중적인 민중이 있다. 머리가 잘려도 다시 자라나는 히드라처럼 민중의 저항도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 저항의 연속성이 오늘날의 역사를 만들었다. 저서에 담긴 산 민중들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역사를 이끄는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과연 민중은 헤라클레스에 의해 제거돼야할 존재일까? 지배층이 만들어낸 히드라가 제거돼야 한다는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 역사는 헤라클레스가 아닌 민중으로부터 시작돼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