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본질적으로 자유로우며 어떤 기준으로도 규정되지 않고, 모든 종류의 예술과 최근의 인문학 조류에 정통하다.
만일 한 학우에 대한 설명이라면 ‘요즘 대학생들은 너무 스펙에 매몰돼 문화나 학문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에게 꽤나 가슴 설레는 문장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청년을 설명하는 말은 아니다. ‘인문예술잡지 F’에 대한 이야기다.
인문예술잡지 F는 계간 예술지다.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2011년 9월 단행본 형식으로 창간했으며 지난해 6월부터 계간지로 정식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잡지는 예술에 대한 인문학적인 비평을 담고 있다. 공연예술, 시각예술 등을 망라한 모든 ‘예술’을 비평 대상으로 하되, 일반 예술잡지에서 눈여겨보지 않는 탈장르 예술, 실험적 예술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수박 겉핥기식의 ‘교양’ 인문학보다는 깊지만, 대학생들이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인문학적 시각을 선보인다. 특히 ‘ㅇㅇ학 입문’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박제된 인문학이 아니라 최근 이뤄지는 담론을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다.
잡지를 꾸려가는 6인의 편집위원들은 각각 △과학사 전문가 △문학평론가 △사회학자 △시인△영화평론가 △정신분석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평범한 예술잡지에서 볼 수 있는 편집위원진은 아니다. 유운성 편집위원에게 그 이유를 들어볼 수 있었다.

“예술을 다루는 잡지들은 대부분 특정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던 관계자들이 모여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보니 그 분야를 다루는 잡지들은 서로 필자도 내용도 비슷하며, 결정적으로 해당 분야의 사람들이 쓰다 보니 완전히 자유로운 비평이 존재하기 힘들다. 6인의 편집위원들은 바로 이런 맹점에서 자유로운 잡지를 만들고자 했다. 다들 예술분야에 관심과 지식은 있지만 특별히 그 분야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비평을 할 때 눈치를 볼 여지가 없다. 예를 들면, 씨네21에 기고하는 내가 인문예술잡지 F에 글을 쓸 때는 영화가 아닌 설치미술에 인문학적인 관점을 끌고 들어오는 식이다. 편집위원이 아닌 이들에게 기고글을 부탁할 때도 이 원칙은 지켜진다”

인문예술잡지 F는 순서대로 특집 기사와 인터뷰, 리뷰에 해당하는 글들로 이뤄진다. 특집은 매 호마다 정한 주제로 3~6편의 글을 싣는다. 1호를 예로 들면, ‘재난’이라는 공통 키워드로 ‘체르노빌, 재앙의 풍경에 대하여’, ‘두리반, 폐허의 자리에서 자립의 거점으로’, ‘예술, 재난 앞에 선 작고 미련한 인간이 바치는 헌사’ 등 서로 다른 시각에서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글을 쓰는 것이다. 유 편집위원에 따르면 “호마다 주제에 따라 글의 성격과 다루는 소재가 판이해 서점에서 이 잡지를 ‘인문’코너에 꽂아야 하는지, 예술잡지와 함께 비치해야 하는지 늘 고민할 정도”라고 한다. 리뷰나 인터뷰 등을 통해 조명하는 작품들은 예술계에선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받은 실험적 예술이지만 기존 예술잡지를 통해 충분히 담론화되지 못한 것들이다.
잡지의 내용만 독특한 것이 아니다. 잡지의 표지는 매 호 동일한 잡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필진들 뿐 아니라 디자이너들도 자유롭게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편집위원들의 공통된 생각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또 일반적인 잡지가 얽매이는 다른 모든 것들도 거부했다. 수익을 위한 외부 광고는 싣지 않는다. 보통 3, 6, 9, 12월 초에 발간되는 다른 계간지들과 달리 1, 4, 7, 11월 말일에 나온다. 이렇듯 인문예술잡지 F는 다루는 소재, 방식, 그리고 디자인에서 발행방식까지 모두 통념의 ‘사이’를 관통하고자 하는 삐딱한 잡지다.
가볍게 들고다닐 수 있는 가까운 인문잡지를 지향하는 동시에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인문예술잡지 F. ‘스펙에 파묻힌’ 대학생들에게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