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재(러문08)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최근 어느 아이돌 가수의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는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문득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 ‘민주화’란 어떤 의미인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처럼, 87년의 그날은 우리 사회의 방향이 민주주의로 선회한 날은 될 수 있을지언정 민주주의가 완성된 날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물론 무엇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냐고 되물으면 저도 머쓱합니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대표자를 뽑는 것이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분명히 다른 의견을 말한다고 해서, 정부를 규탄한다고 해서 탄압받지 않고, 아니 최소한 목숨은 잃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강경대와 김귀정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고, 잊혀져서도 안 되는 이름입니다.
91년 4월, 한 대학 새내기 청년이 명지대 근처 담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됩니다. 그는 노태우 정권의 공안탄압을 규탄하고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했다가 악명 높은 ‘백골단’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 명의 백골단은 도망치던 청년을 기어코 끌어내 쇠파이프로 무차별 구타하고선 방치하고 떠나버립니다. 청년은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 시간 만에 사망합니다. 그 청년이 바로 강경대 열사입니다.
우리 손으로 뽑은 정부의 손에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시민들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즉각 사태의 책임을 물어 내무부 장관을 경질했지만, 그것뿐이었습니다. 정부와 경찰의 계속된 책임회피와 적반하장에 사람들의 분노 역시 커져만 갔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열린 추모대회에서 한 청년이 폭력살인 규탄과 공안통치 종식을 외치며 분신합니다. 전남대 학생 박승희 열사였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뒤이어 안동대 학생 김영균 열사가, 그리고 경원대 학생 천세용,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성남 피혁 노동자 윤용하, 부평 공단 노동자 이정순, 전남 보성고 학생 김철수, 노동자 정상순 열사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한 달 사이에 열 명의 목숨이 진 것입니다. 이른바 ‘열사 정국’, 혹은 ‘5월 항쟁’의 시작입니다.
5월 25일, 또 한 분이 세상을 떠납니다. ‘폭력살인 민생파탄 노태우정권 퇴진을 위한 3차 국민대회’에 참가했다가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몰려 자욱한 최루탄 속의 무차별적인 구타 세례에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학교 학우 김귀정 열사입니다. 열사의 시신이 영안실에 안치됐을 때 경찰은 시신을 빼앗기 위해 심하게는 새벽 동안 세 번이나 병원으로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루탄 연기로 자욱한 병원 안을 끝까지 지킨 것은 우리 학교의 선배들이었습니다. 그 길고 뜨거웠던 91년의 5월은 김귀정 열사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며 그렇게 한 시대를 우울하게 감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의 기억은 아픈 기억입니다. 하지만 또한 위대한 기억입니다. 성균관대학교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구성원들이 김귀정 열사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날의 역사가 오늘의 우리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날의 함성을 들을 수는 없지만, 기억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더 완성된 민주주의를 위해 그날의 기억을 온전히 후대로 전하고자 합니다. 제22주기 김귀정 열사 추모제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조현재(러문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