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과캠 만남- 경동제약 대표이사 류덕희(화학56) 동문

기자명 나다영 기자 (gaga0822@naver.com)

▲ 류덕희 동문이 학교 대표로 활동했던 4·19혁명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은솔 수습기자 webmaster@skkuw.com

여기 77세의 나이에 한 회사를 이끌고, 우리 학교 총동문회장까지 연임하고 있는 노장이 있다. 바로 경동제약 대표이사 류덕희(화학56) 동문이다. 그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있던 산 증인이자, 후배를 위해 오늘도 개척을 멈추지 않는 선배다.
어릴 적부터 그는 딴죽을 걸기 좋아하는 개구쟁이였다. 그가 화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도 딴죽걸기에서부터 시작됐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어려운 질문을 준비해 새로 부임한 화학 선생님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을 즐겼다.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그 덕분에 화학 시험에서 1등을 하게 됐다. 그 후 화학을 자기 분야라고 생각하고 부단히 노력하다 보니 오늘의 위치까지 오게 됐다고.
류덕희 동문의 대학 시절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는 휴학계를 내고 회사에 다니기도 하고, 학교로부터 장학금을 받으며 어렵게 졸업장을 얻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문리과 회장이었던 그는 우리 학교 총대표로 역사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는 1500명의 학우들을 이끌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서울 거리를 활보했다. 광화문에서 종로경찰서, 경복궁에 이르기까지 고려대와 서울사범대 등의 학생들과 함께 경찰과 대치했다. 3·15 부정선거로 당선된 부통령 이기붕의 집 앞에서 전경들에게 물대포를 맞기도 했다. 동참한 학생들 모두 현실을 개척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생사를 함께했다. “젊은 시절의 경험은 내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어. 그것이 나를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지.”
용기와 개척 정신을 알려준 모교는 아직도 그에게 추억의 보고다. 그것이 오늘날 총동문회장을 맡고, 학교에 꾸준히 기부를 하고 있는 이유다. 그는 2000년 총동문회 총무이사 당시 초라한 총동문회관을 보고, 건물 구축에 앞장서 회비를 걷었다. 그때 지어진 건물이 오늘날 세워진 5층짜리 동문회관의 원형이다. “값어치 있는 일에는 앞장을 서야해. 누군가 주도하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야.”
그는 후배들에게 도전하라고 말한다. “요새 대학생들은 정말 발랄하고 활기가 넘쳐 보여서 좋아. 그런데 개척정신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워.” 그는 확실한 목표를 세우고, 현실을 바꾸려는 의식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오늘날 그의 제약 회사가 성장한 것도 수입 약품을 ‘국내화’ 하려는 개척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만들면 되는데 ‘왜 이것을 수입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당시의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발상을 했던 거지.” 모두가 우려했지만, 그는 외국 회사에 직접 찾아가 획득한 원료로, 국내에서 약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의 회사는 오늘날 수 십개의 특허를 보유한 영향력 있는 기업이 됐다.
작은 의자에 앉아 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아직 식지 않은 대학 시절의 열기를 담겨있었다. 류 동문은 굳은 신념으로 현실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역사를 보여주는 화석 같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