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주기 김귀정 열사 추모제 스케치

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 김귀정 열사 추모제에 참여한 학우들이 김귀정 열사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김귀정 생활도서관
민주화의 봄은 쉽게 오지 않았다. 1991년 5월의 캠퍼스는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에 맞선 투쟁으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이때 김귀정(불문88) 심산연구회 회장이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다 백골단의 토끼몰이 진압에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최루탄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열사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학우들이 모여들었고, 그녀의 죽음은 민주화의 봄을 앞당기는 시발점이 됐다.   
그로부터 22년 후. 지난달 26일 마석 모란공원에서는 ‘제22주기 김귀정 열사 추모제’가 열렸다. △김귀정 생활도서관(이하 생도) △중앙동아리 심산한누리 △프랑스어문학과 학생회가 함께 준비한 이번 추모제에는 100여 명의 재학생을 비롯한 동문들이 참여해 열사를 추모하고, 그의 정신을 기리는 자리를 가졌다. 기자도 모란공원으로 이어지는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오전 10시, 학우들을 실은 학교 버스가 경기도 남양주시 가평군에 위치한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김귀정 열사는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의 중턱에 잠들어 있었다. 열사의 가족들이 묘소를 지키는 사이, 학우들은 영정 앞에서 분향하고 열사 정신을 기리는 노래를 제창했다. 추모 뒤에는 자치 단위별로 모란공원에 위치한 민주열사들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는 시간도 가졌다. 유달리 강한 봄 햇살과 험준한 산길에 쉽지 않은 묘역 참배였지만 열사들의 묘소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오전 12시 즈음 점심 식사 차량이 도착했다. 100여 명가량 분의 식사는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인 김종분씨가 매해 추모제마다 준비해오고 있다. 각종 김치와 새우볶음, 편육과 튀김 등이 반찬으로 나왔고, 후식으로 수박이 제공됐다. 식사 후 진행된 추모제 행사는 △김귀정 열사 어머니와의 만남 △김귀정 열사 장학금 수여식 △졸업생, 새내기, 재학생 대표 발언 △학내 몸짓패 및 노래패 공연 등으로 꾸려졌다. 재학생 대표로는 노윤지(정외11) 사회과학대 TATA 학회장과 이재홍(한교11) 사범대 회장이 발언했다. 이 회장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동문인 만큼 대표자로서 함께 추모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이번 추모제에서는 학우들의 추모 공연이 두드러졌다. 사범대 노래패 ‘노랫결’이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러 관중의 박수를 받았고, 사회과학대 노래패 ‘아우성’이 ‘우리 하나 되어’를 부르자 학우들이 무대로 나가 율동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과대 몸짓패 ‘아성’ 또한 더운 날씨에도 활력 있는 몸짓을 선보였다. 추모제 행사에 참여한 정진아(인문13) 학우는 “추모제 행사를 보며 역사가 한순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것임을 실감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위치한 김귀정 열사 묘소./ ⓒ김귀정 생활도서관
한편 이번 추모제는 추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예년과 같이 예산 지원 건을 인사캠 중앙운영위원회 안건으로 올리고자 했으나, 인사캠 총학생회(회장 김민석·경제06, 부회장 박지영·경영09) 측에서 회칙상 생도가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닌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에 생도 측은 문과대에 안건 상정을 요청했다. 문과대에서 이를 받아들여 추모 사업비 지원 사안은 기타 발의 안건으로 검토됐다. 당일 발의된 안건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분담금 지원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힌 단과대는 하나도 없었다. 이규정(철학11) 문과대 회장은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열사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분담금 부담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열사의 죽음 이후 22년이 흘렀지만, 추모제의 의미는 다하지 않았다. 초기의 추모제가 죽음의 비극성을 알리고 저항을 이끌어낸 촉매제였다면, 오늘날엔 현재의 민주주의를 깊이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더욱 꽃피우기 위하여’라는 열사 일기 속의 문구는 2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선명한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지금, 당신에게 민주주의의 의미는 무엇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