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서각이란 글씨나 그림을 나무나 돌 등에 새기는 것이다. 중국의 갑골문 등 고대인의 유물에서도 그 기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나무 공예품부터 비천당 현판, 그리고 광개토대왕릉비까지 모두 서각 공예 작품이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목판 인쇄본인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 서각이 시작된 시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에는 문자의 보급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서각 예술은 큰 변화를 맞았다. 불교의 수용으로 불경이 목판으로 조성되었고 각종 청동기를 비롯한 각종 금속기에도 명문이 새겨졌다.
고려시대 이후부터 조선후기까지는 서각예술이 서적출판·묘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더욱 폭넓게 활용되며 수요의 증가를 이룩했다. 서각예술의 정수로 꼽히는 고려대장경목판도 고려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불교의 쇠퇴와 일제 식민치하의 전통 문화 말살 정책, 이어지는 서구화 추세에 따라 서각예술에도 침체기가 찾아왔다. 그러던 중 1971년 인사동의 한국 서각사를 중심으로 모인 서각가들에 의해 한국 서각의 맥이 다시 활발히 이어지게 됐다. 현재는 여러 서각 단체와 서각가들이 서각 기술을 현대에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각은 크게 전통서각과 현대서각으로 나눌 수 있다. 전통서각은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의 5가지 서체를 사용하며, 이 서체를 재현하는데 중점을 두는 기법을 활용한다. 현대서각은 1989년 안민관, 이현춘, 유장식 세 명의 서각가가 백악미술관에서 색다른 표현방법을 도입한 작품을 전시한데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대서각의 특징에는 개성적인 서체, 입체적 문자구성 양식 등이 있다.
서각 기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건물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현판에는 주로 글씨가 돌출되고 배경이 평편한 양각 기법을 사용하였고, 글씨 바깥 부분은 채색으로 표현하고 안쪽은 글씨의 맥을 살려 다듬어 내는 음양각 기법도 사용했다. 이 외에도 글씨 부분을 파내는 음각, 그리고 파낸 부분을 평평하게 다듬는 음평각, 그림을 표현하는 화서각 등이 있다.
전통서각에 사용되는 도구에는 서각칼, 보조칼과 망치가 있다. 이 서각칼을 망치로 치면서 전진시켜 조각을 한다. 현대서각도 기본적으로 전통서각에 틀을 두고 있으며, 더 다양한 도구와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서각은 단순히 글씨를 새기는 작업이 아닌, △서예 △조각 △회화가 합쳐진 3차원 종합 전통예술이다. 그리고 그 전통예술은, 당장 우리 주변의 옛 성균관 건물 현판에도, 식당 벽 한편에 걸린 나무 조각품에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것. 놀랍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