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수민 기자 (skkusue@skkuw.com)

탁 트인 풍경이 아름다운 한적한 충청도 시골. 체험학교는 멀리 대천해수욕장이 보이는 한가로운 전원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서각진흥협회장 정지완 서각가는 이곳에서 개인 작업장 겸 서각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서각을 배우고 싶다면 5명 단위로 팀을 구성해 정 서각가에게 연락을 취하고 방문하면 된다. 작업장 내부의 넓은 작업대와 갖가지 공구, 정지완 서각가의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풍경과 작업장 내부를 사진에 담으며 도시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물씬 느꼈다.


“서각 어렵지 않아유”

▲ "창칼의 각도를 유지하는 것과 망치를 적당히 두드리는 것이 핵심이에요."

칼과 망치를 잡기 전, 정 서각가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서각의 순서와 방법, 도구를 사용하는 법 등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서각에 새기고자 하는 글씨를 ‘서고’라고 한다. 기자가 새길 서고는 ‘날마다 좋은 날’. 서고가 결정되면 각법을 정해야 한다. 각법에는 △양각 △음각 △음양각 △음평각이 있다. 양각은 글자가 위로 올라오게 새기는 방식이고, 음각은 글자를 파내 배경이 위로 올라오도록 하는 것이다. 음각으로 글자를 파낸 후 글자의 근육을 만들어 주면 음양각, 그냥 평평하게 다져주면 음평각이다. 세부적인 설명을 마친 정 서각가는 직접 시범을 보였다. 양각은 서고의 검은 글씨를 제외한 배경을 파내야 한다. 창칼을 쥐고 망치를 수평으로 치며 배경을 파내어 가는 작업은 보기에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자 이제 한번 해 보셔야지유?”
정 서각가는 기자에게 창칼과 망치를 건넸다. 막상 도구를 잡으니 손이 떨려왔다. 조심스럽게 망치로 창칼을 쳐가며 배경을 파내기 시작했다. 보기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정 서각가가 다룰 때와는 달리, 창칼은 자유자재로 움직여지기를 거부했다. 그래도 배경의 반쯤을 파내자 어설픈 자세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 정 서각가의 “그렇지, 그렇지.”추임새에 따라 15분가량 배경을 파내자, 글씨와 배경을 완벽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해졌다. 나무 한편에는 기자의 이름을, 다른 편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새겨 넣었다.

“잘 파는 것보다 잘 건조하는 것이 중요하지유”
파내는 작업을 끝낸 후, 먹물로 나무를 칠했다. 이후 색조를 입히기 위한 밑바탕 작업이다. 검게 덮인 나무를 말려야 한다. 때마침 오후 3시, 한낮의 햇빛은 먹물을 말리기에 충분했다. 서각은 파는 것만큼 제대로 건조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간이 꽤 걸리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다양한 손님이 정 서각가의 작업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 '날마다 좋은 날'을 새긴 서각 작품의 완성본.

'날마다 좋은 날'
모르는 손님들이 와서 어울려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또 정 서각가의 작업실이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박을 먹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 얘기부터 날씨, 농사 얘기까지. 물론 서각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보니 나무는 이미 잘 말랐다. 이번엔 도색 작업이다. 초록, 빨강, 하늘색 등의 잉크를 사용해 나무 위에 전체적으로 덧바른다. 먹물을 칠할 때와는 달리 스치듯 바르는 것이 포인트다. 마지막에는 흰 잉크로 글씨 부분을 살짝 덧칠해준다. 초록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배경 위로 글씨가 두드러진다. ‘날마다 좋은 날’. 드디어 기자의 첫 서각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