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마붑 알 엄은 99년에 처음 한국에 왔다. 그때는 공장에서 일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이주민 문화를 위한 단체와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다. 영화와 다큐멘터리 제작 전문가이기도 하다. 전공했던 회계학도 그만두고 한국에 귀화할 만큼 그 일이 좋다고 한다. ‘한국 사회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서 당당하게 일하고 싶어서’ 한국인이 됐다는 그에게 물었다.

 

왜 문화운동을 시작했나요?
한국에서 일할 때 친구들이 월급 못 받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면 제가 종종 도와줬어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서 국가기관이나 시민단체를 통해서 항의하는 게 가능했거든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의 원인을 없앨 수 없었어요. 그 원인은 모두 ‘일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봤고요. 노동 기본권을 거의 보장하지 않는 거예요. 이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어쨌든 그 때의 제도는 정부가 만들어냈으니까 정부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노동운동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지만 결국 해냈죠.
그러다 이주민들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많이 왜곡돼있다고 느꼈거든요. 같이 이주민 인권 운동하는 단체의 일각에서는 ‘불쌍해서 돕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언론에서는 소수의 사례로 이주민들 전체를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일반인들은 관심이 없고요. 그래서 미디어를 선택했어요. 변질되지 않은 우리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해보자는 의도였어요.
그리고 이주민 예술 문화라고 하면 “신기하다, 한국말 잘한다”하고 받아들이고 끝나는 것도 안타까웠어요. 다양한 관객들을 좀 더 많이 만나서, 그들이 이주민 예술을 일회적인 컨텐츠로만 인식하는 것을 넘어 그 자체의 가치에 매력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영화를 제작하고 출연도 하는데, 어떤 계기로 영화 일을 하게 됐나요?
오래전부터 다큐 제작에 관심이 있었어요. 이주민들 이야기를 영상으로 가까이 담아보자는 생각이었죠. 2002년도부터 다양한 방송활동을 하다가 영화출연 제안을 받았어요. ‘복수의 길’이라는 영화였는데, 작은 화면에 나오는 제 얼굴을 보니 큰 화면에 나오면 어떨지 궁금해지더군요. 그 뒤로 여러 영화에서 잠깐씩 출연하다가 ‘반두비’라는 영화의 주연을 맡기도 했죠.
제가 출연하는 영화들이 저예산영화라 작업환경이 안 좋긴 해요. 제작 과정 전체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고 마음껏 여러 가지 논의를 깊게 해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죠. 그래서 그런지 영화 촬영 사전 작업부터 시작해서 연기, 시사회나 개봉, 관객과의 대화 등 영화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작업들이 전부 흥미로워요.

AMC(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를 설립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즘 한국에 이주민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지원들도 많아졌어요. 16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이주민 중에서 30만 명 정도에 해당하는 국제결혼 이주여성 중심으로 많은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하지만, 문화예술과는 거리가 먼 사업들이에요. 이주여성들이 한국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성격인 것들이 많죠. 우리는 지원 대상인 ‘이주민’을 더 넓게 잡고 싶었어요. 이주민이라고 해서 꼭 국제결혼 여성이 아니라 유학생일수도 있고 난민일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을 위한 ‘문화예술’ 지원을 펼치는 거죠. 문화예술에 재능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활동하지 못하는 현실을 바꿀 거예요.
AMC에서 하는 대표적인 사업은 프리포트 운영과 이주민예술제가 있어요. 프리포트는 AMC가 지향하는 △공정무역 사업 △이주민아티스트 활동 지원 △영상, 연극 등 미디어 제작 등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서울이주민예술제는 이주민·선주민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축제로 1년에 한 번씩 이뤄지는 페스티벌이에요. △벼룩시장 △연극 △영화 △음악공연 △파티 등의 프로그램이 있죠.

프리포트를 개관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주민이 주체가 되고, 이주민과 원주민이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있으려면 공간이 필요했어요. 여자든 남자든, 어떤 국적이든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자유항(free port)’같은 공간이요. 분위기 자체를 그렇게 만드는 거죠. 이주민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예술에 뜻이 있는 이주민들을 모으고, 그 과정에서 지구인밴드처럼 다양한 문화를 융합할 수도 있겠죠.
프리포트라는 공간을 통해서 그런 작업을 해볼 수 있고, 너도 나도 하나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물론 어려워요. 어려운데, 재밌는 거예요. 음식들도 다르고 문화도 다 다르니까 재밌는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꾸려나갈 생각인가요?
이 센터가 단지 2~3년 반짝하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래오래 살아남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프리포트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자발적으로 문화예술 행사를 펼치는 공간이 돼야겠죠. 운영자들은 그걸 지원하는 역할만 해주고요. 우선 제 2회 서울이주민예술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싶어요. 행사를 매년 열면서 이곳을 알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