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다영 기자 (gaga0822@naver.com)

 

 
바이러스, 그 쿨한 여행자
모든 생명체는 세포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세포 형태를 갖추지 않았는데도 생명체의 특징을 보이는 존재가 있다. 바로 바이러스다. 그는 빈손으로 여행하는 쿨한 존재다. 여행자는 혼자 대사체계를 만들 수 있는 에너지 생산계가 없다. 하지만 숙주의 에너지 생산계를 이용해 물질대사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증식에 필요한 리보솜이라는 단백질을 가진 세포를 찾아다닌다. 세포는 바이러스와 다르게 에너지계를 이용해 대사체계를 유지하는 안정적인 여행지기 때문이다. 여행지의 문을 여는 순간, 세포는 바이러스의 숙주가 된다.
그런데 이 쿨한 여행자는 빈손으로 왔으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으로 여행지의 정체성을 바꿔버린다. 자신의 유전정보인 핵산을 여행지인 세포에 퍼뜨리는 것이다. 여행지는 유전정보에 따라 병들 수도 있고, 그냥 유지될 수도 있다. 여행자는 세포내에서 자신을 빠르게 증식한 후, 쿨하게 또 다른 세포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국제바이러스계통분류위원회의 한국학회 대표인 정용석 경희대 교수는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르면 생물은 자신의 무질서를 질서로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끌어다쓰는 존재”라며 “바이러스는 최소의 장비로 생물적 환경자원에서 에너지를 만들어 질서를 유지하는 비세포성 생명체”라고 말한다. 여행자의 살아가는 모습이 보통 생명체와는 다른 것이다.
바이러스의 활동구역이 뒤섞이고 있다고?
쿨한 여행자가 활동영역을 스크린까지 확장했다. 곧 개봉될 영화'감기' 속 바이러스는 H5N1(조류 인플루엔자)의 변종으로 3.4초마다 1명씩 사망시켜 한국을 종말로 몰아간다. 조류독감바이러스는 △닭 △야생조류△오리의 바이러스로 본래 인간에게는 감염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숙주를 거치면서 돌연변이가 축적돼 이제는 인간을 포함해 돼지, 조류 모두에게 감염되는 맹독성 바이러스가 된 것이다. 영화 뿐 아니라 전 세계에도 변종으로 인한 맹독성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치명적인 변종바이러스는 왜 생기는 것일까? 정 교수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으로 바이러스의 활동구역이 뒤섞여 종간장벽이 무너지고, 그로인해 다양한 변종이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이러스에게도 진화의 역사가 있고, 비슷한 종만을 찾아 여행하는 종간장벽이 있다. 그런데 인간이 동물을 가축화시키고, 인류 간 물류이동이 발달하면서 바이러스의 활동구역이 뒤섞여, 조류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도 감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바이러스 감염도 마찬가지다. 우리 학교 배용수 생명공학과 교수는 “21세기의 난치성 바이러스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후천성면역결핍바이러스(HIV)나 만성간염을 일으키는 B형,C형 바이러스”라며 “이것은 대개 향정신성 약물의 정맥주사나 감염자와의 성적 접촉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건전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이러스는 나의 자연이다
결론적으로 영화처럼 바이러스는 인류를 멸망시킬 수 없다. 바이러스라는 여행자에 의해 모든 인간의 세포가 병이 들 가능성은 없다. 바이러스의 종류는 수 없이 많고, 인간의 유전정보 또한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감기바이러스를 현실에서 걱정하며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바이러스를 적으로 설정하는 것일까? 우리는 단지 바이러스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세포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사실은 그들도 인간처럼 지구 상에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점이다. 바이러스가 이롭게 사용되는 사례들도 있다. 세포의 정체성을 바꿔버리는 쿨한 여행자의 특성을 이용해서 말이다. 레트로 바이러스는 유전자 치료와 임상적 도구에 사용되며, 면역의 특성을 지닌 바이러스를 주입해 특정 질병에 내성을 갖는 식물을 만들 수도 있다.
바이러스는 당근, 토끼, 민들레처럼 우리에게 자연이다. 좀비바이러스, 바이러스를 이유로 그들을 적으로 여기면 안된다. 악성 바이러스에 대해서 정 교수는 “바이러스의 변종을 막을 순 없지만, 그들의 가속화를 막을 수는 있다”며 기존의 인간에게 정립된 생태적 영역을 필요 이상으로 침범하지 않을 것을 조언한다. 생물학적 문제는 곧 우리의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8월의 바이러스 열풍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인류의 종말이 아니라, 바로 인류와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