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상 2013'전

기자명 김태윤·배공민 기자 (webmaster@skkuw.com)

▲ 공성훈 작가의 '겨울여행',

우리 사회의 가차 없는 천박함 그 자체.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경쟁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찾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실에는 경쟁에 뛰어든 4인의 작가가 그들만의 감성을 펼친다. 주제도 매체도 모두 다르다. 공통점은 현실의 삶에서 마주하는 의문점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작품에 녹아 있다는 것.
마주한 네 개의 입구 중 공장 입구를 연상시키는 조그마한 쪽문이 보인다. 함양아 작가의 '넌센스 팩토리' 공장 입구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갑작스레 흔들리는 바닥. 시작부터 넌센스, 현기증이 몰려온다. 이곳은 물 위에 설계된 ‘넌센스 팩토리의 지하 1층’. 예기치 않은 흔들림에 당황한 관람객들이 앞으로 가기 위해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더 기울어질 뿐. 팩토리 건축가가 예측한 이상적 균형은 모두가 앞으로 발을 딛는 행위에 의해 깨져버린다. 이는 민주주의와 같은 이상적 가치가 균형을 상실한 채 아슬아슬하게 흔들거림을 형상화한다. 이어서 ‘새로운 팩토리의 도면을 그리는 방’을 마주한다. 살기위해 장애물을 넘나드는 실험용 쥐의 영상. 갈수록 복잡해지는 미로는 실험용쥐를 더 빨리 달리도록 압박한다. 어쩌면 우리 또한 위험한 사회 구조 속에서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종용당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성장제일주의를 비판하는 함양아식 방법이다. 몇 걸음 옮겨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마주한다. ‘I came for 행복? 항복?’ 깜빡거리는 불 때문에 행복과 항복사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다, 이곳은 행복하기 위해선 항복해야하는 ‘복지정책을 만드는 방’이다. 관람객들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팩토리와 현실 사회 사이 혼란을 느낀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팩토리인지, 현실사회인지. 그것은 모두 넌센스다. 심지어 이마저도 판옵티콘과 같은 ‘중앙 이미지 박스 통제실’로 전송돼 감시당한다. 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작게 픽셀화돼 통제실의 큰 화면을 이룬다.
▲ 조해준 작가와 그의 아버지가 함께 만든 '기념수'의 모습.

팩토리를 나와 중앙홀을 따라 도착한 곳은 신미경 작가의 '트렌스레이션-서사적기록' 전시실. 전시실에 들어가자 향긋한 비누향이 코를 감싼다. 향기의 진원지를 찾다 눈앞에 놓인 조각의 재료가 비누란 것을 깨닫는다. 그녀의 작품은 후각이라는 새로운 감각의 경로로 관람객들을 전시실로 이끈다. 전시주제인 ‘번역’은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으로 이뤄진다. ‘풍화프로젝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번역 도자기’는 공간의 이동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됨을 보여준다. 중국도자기는 실제로 중국에서 사용되지 않고 유럽인의 취향에 맞추어 제작된다. 유럽인의 시각으로 번역된 이것은 원본일까? 그들의 취향에 맞춘 번역본인가? 생활 도구로서 도자기는 원본이고 박물관에 놓인 예술품으로서 도자기는 번역본인가? 작품 앞 우리는 원본과 번역본, 그 모호한 경계에서 혼란을 느낀다.

▲ "행복을 위해선 항복이 필요하다"

함양아 작가의 'I came for 행복/항복'.

발길을 돌려 조해준 작가의 전시관에 들어선다. 그림에 손으로 써진 작가의 해설과 아버지의 감상평은, 어린 시절 그림일기와 담임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을 연상케 한다. 첫 작품에서는 아버지에게 혼나가며 한글 공부를 했던 학창시절이 엿보인다. 어릴 적 일을 회상하는 작가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벽을 따라 이동하니 작가가 카투사에 복무했던 일화가 담긴 작품이 보인다. 미군들이 한국인 병사들에게 막사 내 물건을 훔쳐가지 말라고 협박했다는 일화를 담담하게 써낸 그의 문체 속에서 가난했던 우리 시대의 아픔이 느껴진다. 이를 들은 아버지는 좀 더 과거의, 자신의 군 생활을 기억해낸다. 발랄했던 소녀가 고된 노역으로 목발을 짚은 채 막사를 떠나가던 모습. 한국 사회의 역사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다음 전시관으로 향한다.

▲ '트랜슬레이션 비너스 프로젝트'.

신미경 작가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공성훈 작가의 전시관을 들어선다. 캔버스로만 이루어진 전시관은 휑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작품을 감상할수록 그의 의도는 캔버스에 오롯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의 주제는 겨울 여행이다. 겨울 여행이라고 하얀 눈밭에서 뒹구는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은 없다. 시커멓게 역광으로 그려진 나뭇가지와 폭풍우가 불고 있는 바다, 깎아지른 아찔한 절벽……. 멀리서 보면 스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자 다른 인상을 준다. 으스스한 풍경 속에서 손톱만한 담배를 피우는 남자. 그는 무려 네 개의 작품에서 등장한다. 남자는 폭포와 절벽, 그 광활한 자연 속에서 담배를 태운다. 구부정한 그의 등이 불안해 보인다. 그의 불안은 무엇 때문일까. 불안의 실체가 무엇이든 달라지지 않는 사실은, 그것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회현실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네 명의 작가가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들은 시각, 청각, 때로는 후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우리네 삶의 밝지만은 않은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 그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