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지은 편집장 (skkujen10@skkuw.com)

최근 힙합계의 디스(diss)전이 큰 관심을 끌었다. 랩을 통해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다른 뮤지션들을 비방하는 것이 ‘디스전’의 골개다. 비방엔 그에 대한 맞대응이 따른다. 즉, ‘디스는 디스를 부른다’. 스윙스를 시작으로 이센스, 개코 등 유명 랩퍼들이 디스전에 가담했다. 이윽고 극단으로 치달은 디스전 속에서 독특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랩퍼 양동근이 ‘Mind Control’이란 곡을 발표한 것이다. 해당 곡은 한국 힙합계의 디스전 자체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러셀의 역설’.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는 양동근의 랩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그가 던진 의문은 다음과 같았다. ‘양동근의 랩퍼 디스전 디스는 랩퍼 디스전에 포함되나, 안 되나’.
 
‘러셀의 역설’이란 개념은 영국의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제시한 것이다. 러셀은 1901년 집합론의 모순을 지적했다. ‘모든 집합을 원소로 가지는 집합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론이었다. 이는 ‘진실이면서 거짓이고 거짓이면서 진실이기도 한’ 모순적인 현상을 포괄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이렇다. 러셀은 1919년 간행된 저서 ‘수리철학입문’에서 ‘이발사의 역설’을 제시했다. A마을에 속한 이발사가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모든 마을 사람들만 면도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이발사는 스스로 면도할 것인가 면도하지 않을 것인가? 가정 하나. 만약 이발사가 스스로 면도를 한다면, 그에 대한 정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가정 둘. 이발사의 면도를 다른 사람이 해준다면?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자’, 즉 그의 면도 대상에 포함되는 자신을 외면한 꼴이므로 이는 모순이다. 따라서 위의 문장은 진실이면서 거짓이고 거짓이면서 진실이다. 이 밖에도 비슷한 예는 꽤 많이 존재한다. 자화상을 그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 자서전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전기만 쓰는 전기 작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디스전에서 촉발된 역설적·모순적 문장에 대한 논의는 순식간에 많은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렇다면 다음 문장도 당신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까. 필자가 이번 호 본지에서 다룬 사안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들어봤다. ‘스폰 받을 수 없기에 스폰 받는 대학 동아리’. 이 문장이 탄생한 배경은 이렇다. 취재 중 만난 한 사람은 대학 동아리 공연이 그렇게 퀄리티 있지 않기 때문에 전문 기업의 지원이나 푯값을 통한 지원은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스폰 받기 어려워 힘들다’고 외치는 동아리들이 선택한 타개책 역시 스폰이었다. 주변 상권으로부터의 스폰. 모순적이지 않은가. ‘기업이나 푯값을 통한 스폰’과 ‘주변 상권으로부터의 스폰’의 차이는 ‘강압성’의 동반 여부다. 후자는 ‘내가 당신의 고객’이라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일정 정도 강제성을 수반한다. 그리고 이는 불합리한 스폰 문화를 관례로 탈바꿈시켰다.
 
이쯤 되면 윤동주 시인의 유명한 시 구절을 차용해볼 수도 있겠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스폰이 이렇게 쉽게 조달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동안의 논리적 자기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