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 쌍차 분향소 스케치
도심 한복판에서 타인의 죽음을 기린다는 것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 한때 궁궐의 중심 행차로였던 이곳은, 현재 늘어선 경찰들과 거대한 경찰 차량으로 둘러 막혀 있다. 24시간 계속되는 네 개 중대의 특별 관리 속에서 쌍차 분향소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1년을 넘겼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죽음을 맞은 쌍차 해고자들을 기리고자 시민들은 손수 그들의 상주로 나섰다. 기자도 사흘간 그들의 상주가 돼 대한문 분향소를 지켰다.
1일 차 횡단보도 너머로 본 대한문의 첫인상은 선뜻 발을 내딛기 힘든 곳이었다. 거대한 경찰 차량 두 대가 시야를 막고 있었고, 곳곳에 배치된 경찰들의 모습이 위압감을 줬다. 얇은 판 하나에 붙은 22개의 영정 그림과 몇 개의 국화꽃, 향초가 분향소임을 나타내는 전부였다. 맞은편에서는 쌍차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들의 서명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자리를 지키던 쌍차 해고 노동자 이현준씨에게 대한문 분향소의 의미는 남달랐다. 쌍차 해고자 대부분이 평택에 사는 상황에서 서울 한복판에 분향소를 차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자리를 잡을 때 경찰과의 마찰이 굉장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수십 명이 연행됐고, 이후로도 구청의 철거 시도가 계속됐다. 그러나 분향소는 그들에게 쌍차 사태를 알리기 위한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이들의 절박함에 종교계도 뜻을 함께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매일 저녁 대한문에서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매일미사'를 열고 있다. 매번 100여 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들이 쌍차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보탠다. 142일차를 맞은 이 날 미사에도 13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3일 차 다음 날 찾은 쌍차 분향소는 어느 때보다도 초라했다. 종이로 프린트된 임시 영정은 비를 흠뻑 맞고 있었고, 서명을 받는 장소를 지키던 이들은 서명 용지를 꺼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쏟아지는 비를 피해 우비와 우산으로 무장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쏟아 붓는듯한 빗줄기가 몰아치는 날씨에도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이어졌다. 이날 시민상주단으로 참여한 대학생 고은비씨는 “쌍차 문제가 잘 해결되면 우리나라 노동 현실도 개선될 거라 생각한다”며 쌍차 문제 해결을 기원했다. 이날 분향소를 함께 지킨 김지현 씨 역시 천안에 사는 시민이었다. 트위터를 통해 쌍차 문제에 대해 알게 된 그는, 1년째 하루가 멀다 하고 대한문으로 출근도장을 찍고 있었다.
영하의 날씨에 침낭 하나로 버티던 겨울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차양막 하나 없이 거리에서 분향소를 지켜야 하는 여름까지. 쌍차 분향소의 일 년은 늘 시민들과 함께였다. 여전히 매연과 열기를 내뿜는 대형 차량과 수많은 제복 경찰들로 둘러싸인 대한문이지만, 분향소에는 타인의 죽음을 더는 묵인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의지로 피워 올린 한 줄기 향초가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