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조경태(사과계열13)
많은 사람이 자신의 뇌에 고약한 알고리즘을 탑재하고 산다. 어떠한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이 자신의 객관적인 경쟁력에 도움이 될지 끊임없이 되묻는 것이 그것이다. 필자 역시도 그 기계적인 알고리즘의 충성스런 노예였다. 적어도 이번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그랬다. 약 9개월 전, 수능시험이 끝나고 긴 겨울이 찾아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흘러갔던 고등학교 3학년 시기를 보낸 후 맞는 기나긴 휴식시간은 참으로 어색한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시작해서 일요일 밤에 끝나는 168시간의 순환은 일요일 밤에서 일요일 아침으로 이어지는 24시간의 단순 반복으로 바뀌었다. 마치 누군가가 거대한 댐에 저장해둔 시간을 한꺼번에 내게 방류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알고리즘의 노예로서 애매한 삶을 살았다. 남들이 다 간다는 이유만으로 헬스클럽에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고, 할 필요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특별히 내세울 것이라고는 명작이라고 불리는 책 몇 권을 읽었던 것이 전부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뇌가 쪼그라든 탓일까. 애매하게 철들고 나서부터 필자를 지배해온 그 고약한 알고리즘을 계속 내 머리에 저장하기에는 내 뇌용량이 너무 부족했다. 먼 미래, 무수한 흰머리의 뿌리가 내 두개골을 찌르는 고통을 더는 참을 수 없어 은퇴하기 이전까지 정말 맘 놓고 ‘잉여롭게’ 살 수 있는 시기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이내 여름방학이 찾아왔고, 필자에게 주어진 조건은 9개월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곧, 필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적극적으로 게을러졌다. 스무 살의 패기, 혹은 객기로 만끽하는 마지막 방종이었다.
‘후회 없는 잉여인간’, 이것이 개강 1주일을 앞둔 필자에게 스스로 붙인 딱지다. 필자는 ‘귀차니즘’을 최대한 즐겼다. 굳이 유명한 휴가지에 가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자랑하지도 않았고, 고전 명작을 읽으며 예쁘장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고상한 것을 시도해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손만 뻗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허름한 주점에서 술도 많이 마셨고, 하루에 몇 시간을 소환사의 협곡에서 보내기도 했다. 잠도 아낌없이 잤다. 하루는 그저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꽤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햇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정말 2개월을 한량처럼 보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 즉 앞서 언급한 그 고약한 알고리즘이 뇌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지의 여부다. 극도로 여유로운 삶을 살되, 그것을 시간낭비라고 후회할 수도 있고, 그것을 오히려 새로운 경험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쯤 평생을 돌아야 하는 지긋지긋한 기존의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궤도를 돌아보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 2개월을 굳이 반성하지 않기로 했다. 거추장한 반성이 없으니 쓸모없는 후회도, 이유 없는 죄책감도 없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