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최민석(경제10)
지하철에 올라탈 때는 겨울이었는데, 역을 나오자 어느새 가을이 다가와 있다. 지난 학기 내내, 필자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며 하루 네 시간씩 시간을 길에 버려가며 학교에 다녔다.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새벽에 겨우 잠에서 깨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아 눈을 감으면 어느새 내릴 역에 도착해있고는 했다.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게 실감이 난다. 모니터링 요원을 해온 것 또한 그런 느낌이랄까? 발간되고 며칠 내로 보내줘야 하는 리뷰 마감 일자에 허덕이다 보면 시간이 어느새 다 지나가 있고는 했다. 어떻게든 매 호 리뷰랍시고 이것저것 써 보냈으나, 도움이 조금이라도 됐을지가 항상 걱정이었다. 인제 와서 말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지난 1학기 성대신문은 전체적으로 독자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여 괜찮았다. 모니터링 요원이라는 직책을 하나 얻었으니, 그래도 뭐라도 건설적인 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항상 머리를 짜내고는 했지만 도대체 뭘 얘기해야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언제나 어려웠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호 기사에 관해 얘기하기에도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있었다. 딱히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기사도 있었고 어쩐지 꺼림칙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었다. 이를테면 국정원 사태에 대한 학내 여론조사를 다룬 기사는 여론조사를 너무 피상적으로 보고 제대로 분석해내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자과캠 학우들과 인사캠 학우들의 의견에 온도 차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면 아무리 표본이 적다고 하더라도 캠퍼스별로 설문 항목의 조사 결과를 보여주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에도, 인포그래픽에도 그러한 분석은 부족했다. 이전에 성대신문에서 수행한 여론조사 기사에 비슷한 느낌을 몇 번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다음번에는 개선되길 기대한다. 비단 그 기사에 관해서만 할 말이 있는 건 아니다. 1면에 실린 성균어학원의 불법 영어캠프 운영에 대한 비판 기사는 같은 소재를 다룬 여론면의 사설로 인해 그 빛깔이 바래고 말았다. 전반적인 신문 구성도 어수선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신문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느낌이 여기저기서 전해져 왔다는 것은 다른 호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2학기가 기대되는 신문이었다.
방중호에 대해서만 쓸 수도 있겠지만, 모니터링 요원으로서 쓰는 마지막 칼럼이니 다른 소리를 좀 하고자 한다. 대학언론이 위기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다. 독자는 줄고 가판대에서 신문은 줄어들 생각을 안 한다. 지난해에는 편집권과 관련해 마찰도 있었다. 그래서 나름 격려도 할 겸, 이번에는 성대신문을 수년 간 읽어 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성대신문’이라는 매체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입학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필자에게 성대신문에 대한 첫 이미지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변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아직은 그렇게 단언하기는 힘들다. 분명 위에서 얘기했듯이 요새 성대신문 곳곳에서 노력이 엿보이고 예전보다는 독자와 가까운 매체로 변모했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좀 더 독자에게 다가갈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성대신문을 펼쳐보면 레이아웃부터 꽤 무게감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기사를 좀 더 이해가 쉽도록 작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여전히 글이 좀 어렵게 나오는 경향이 종종 보인다. 기자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독자가 기사를 수월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은 당연하다. 노력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구성원들이 좀 더 힘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미가 없다는 것은 결국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러한 느낌을 독자가 강하게 받을수록 독자와 매체간의 관계는 멀어지니 말이다.
잠깐 다른 얘기를 좀 해보자. 지난해에 ‘고급찌라시’가 처음 나왔을 때, 필자는 성대신문이 좀 더 재미있어질 줄 알았다. 타 대학의 경우, ‘자치언론’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언론매체를 만들어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학생회비의 일부를 떼어 이를 지원함으로써 의견 개진의 다양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대학도 존재한다. 우리 학교에는 그런 제도도 없고, 애당초 자치적인 언론활동으로서 대중적으로 지명도를 얻은 종이매체는 ‘고급찌라시’가 거의 최초나 다름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척박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언론 풍토를 가진 우리 학교에서 ‘고급찌라시’는 성대신문과는 아주 다른 방향성을 추구했다. ‘찌라시’라는 표현으로 스스로를 설명해가며 재미있고 통통 튀는 느낌으로 독자에게 다가갔다. ‘기사를 척수반사로 쓰는 듯한 느낌’이라고 지인이 얘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걸 듣고 필자는 이후 성대신문과의 경쟁을 기대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약간 굳어있는 듯한 성대신문의 기사가 어떻게 달라질 지를 기대하기도 했다. 독자와 매체간의 관계에 있어 ‘고급찌라시’가 척수와 손의 거리감을 준다면 성대신문은 뇌와 손과의 거리감을 주고 있는데, 굳이 척수반사로 글을 쓸 필요는 없고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변화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성대신문은 필자의 기대감에 부응해왔다. 성대신문은 근래 여러 가지 노력을 보여줘 왔다. 여전히 일부 기사들은 좀 더 쉽게 쓰여졌으면 좋겠지만, 사회 이슈에 대해 좀 더 예민해진 모습이나 더욱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를 테면 지난 5월의 학교 노동자 특집), 페이스북에서 진행되고 있는 ‘헐퀴즈’ 등의 여러 시도들은 성대신문이 앞으로 대학인과 대학, 대학인과 사회, 대학인과 문화를 잇는 매개체로서 어떻게 달라져갈 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앞으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여러 시도를 선보이는 성대신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글을 실을 일이 있거나 하여 쓸 때마다 매번 절망하고는 한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고는 한다. 기사를 쓰는 기자의 기분은 더 그럴 것이다. 항상 자신이 잘 아는 소재에 대해서 쓰는 것도 아니고, 취재를 심도 있게 하자니 학생이라는 신분은 발목을 잡기도 참 많이 잡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의 각고의 노력을 바탕으로 성대신문이 크게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번 발간주가 끝나면 다음 발간주가 올 것이고,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나면 아마 성대신문 기자들의 심경이 첫머리에서 얘기했던 필자의 심경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독자에게 더 좋은 신문을 전달하려는 노력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코 빛이 바래지 않을 것이라는 건 확실하다. 새로운 학기와 새로운 발간주의 연속을 마주하게 된 기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성대신문에 봄이 오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